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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히잡 시위의 함의
이란 히잡 시위가 촉발된 지 100일이 넘었습니다.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성이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되어 재교육센터로 이소된 후, 사흘 만에 의문사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분개한 시민들은 도덕경찰에 대항하여 항의 시위를 기획하였으며, 이후 시위는 격화되어 이란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란 히잡 규제 관행의 정당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인권의 개념이 존재하는지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도덕경찰의 폭력성은 상대주의적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반정부 시위에 대항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으며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죠. ‘마흐사 아미니’의 목숨을 앗아간 이란의 관습은 인권의 개념을 ‘최소한’으로 정의하더라도 옹호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만약 히잡 규제가 살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악습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슬람 사회에서는 반발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시위 사태는 단지 의문사에 불과할 뿐, 도덕경찰들의 폭력이 ‘마흐사 아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히잡 관행이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란의 히잡 관행이 인권을 유린한 것인지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서구의 맥락에서 규정된 인권 개념을 강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프랑스에서 ‘베일 벗기’를 강제하는 것이 무슬림 여성의 ‘출현할 권리’를 박탈한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슬람 여성들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히잡을 착용하고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슬람의 문화적 맥락조차 모르는 타인이 와서 베일을 벗기고 공적 활동의 기회를 앗아간다고 본 것입니다.
결국 “베일을 벗은 모습이 누구에 의해 ‘정상적’이라고 규정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이 지점에서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이 진정으로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는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권은 단지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교집합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죠.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
현대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역할하고 있는 것은 1948년 정립된 세계인권선언(UDHR)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재연하지 않겠다는 목표 하에 정립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자행한 만행은 인간의 존엄성을 저해함으로써 비인간적인 폭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된 것이죠. 일련의 노력으로 인해 서구를 중심으로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윤리적 가치에 대한 합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의 한계도 명확합니다. 근본적으로 전후질서를 구축하는 상황에서 태동되어, 현대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1993년 UN 세계인권회의에서 채택한 ‘비엔나 선언’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있기도 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담는 과정에서 비서구의 목소리도 경청하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서구를 배제한 채 정립된 세계인권선언이 과연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비서구의 문화적·종교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립되었던 세계인권선언은 역설적으로 서구가 비서구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궤적을 추적해볼 때,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권은 ‘서구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비서구는 배제되었으며, 서구의 대칭점은 언제나 부정적인 타자로서 인식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인권에 대한 개념은 서구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하여 비서구의 문화적 맥락과 주권을 경시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죠.
이렇듯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권을 정립하는 데 있어 문화적 맥락을 포용해야 하며, 다양한 주체가 논의의 장에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하여 인권에 대한 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립하려는 ‘당위’는 마땅하기 때문이죠. 인권을 정립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면 정의는 추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권을 논하는 것이 일견 공허한 것 같지만, 이러한 논의 자체가 세상을 진보시키며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이 없었다면, 이란의 히잡 시위 사태는 더욱 격화되어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저해시켰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 이란 시위에서 주목할 점은 이란 Z세대의 연대입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남성조차도 어딘가 잘못되고 있다는 점을 느낀 것이죠.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에 거리낌이 없는 Z세대는 불의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이익을 저버리고서라도 마음 한 켠에 있는 불쾌한 감정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이죠.
그러므로 인권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이상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인권을 정립하는 시도 자체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거듭된다면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게 될 것이고, 비서구 또한 주체로 참여하여 진정으로 납득할 만한 인권에 대한 논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란 히잡 시위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인간의 생명권과 같은 ‘최소한으로 정의된 인권’은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 사회의 관습을 존중하더라도, 공히 따라야 할 가치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를 이룩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일 것입니다. 칸트는 “만약 정의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지구상에 살 가치가 없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정의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이에 ‘근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인권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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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히잡 시위의 함의
이란 히잡 시위가 촉발된 지 100일이 넘었습니다. ‘마흐사 아미니’라는 여성이 히잡을 부적절하게 착용했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체포되어 재교육센터로 이소된 후, 사흘 만에 의문사한 것이 도화선이 되었습니다.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에 분개한 시민들은 도덕경찰에 대항하여 항의 시위를 기획하였으며, 이후 시위는 격화되어 이란 전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이란 히잡 규제 관행의 정당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적으로 합의할 수 있는 인권의 개념이 존재하는지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물론 도덕경찰의 폭력성은 상대주의적 맥락을 감안하더라도 정당화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반정부 시위에 대항하여 무자비한 폭력을 자행하고 있으며 무고한 시민들의 목숨을 앗아갔기 때문이죠. ‘마흐사 아미니’의 목숨을 앗아간 이란의 관습은 인권의 개념을 ‘최소한’으로 정의하더라도 옹호하기는 힘들 것입니다. 만약 히잡 규제가 살인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면 이는 악습을 답습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니까요.
그러나 이슬람 사회에서는 반발을 제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번 시위 사태는 단지 의문사에 불과할 뿐, 도덕경찰들의 폭력이 ‘마흐사 아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가지 않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히잡 관행이 생명을 앗아갈 정도의 처벌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이란의 히잡 관행이 인권을 유린한 것인지는 다시금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는 서구의 맥락에서 규정된 인권 개념을 강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죠.
예컨대, 철학자 주디스 버틀러는 프랑스에서 ‘베일 벗기’를 강제하는 것이 무슬림 여성의 ‘출현할 권리’를 박탈한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슬람 여성들은 자유로운 선택에 따라 히잡을 착용하고 공적인 활동에 참여하고 있었는데, 오히려 이슬람의 문화적 맥락조차 모르는 타인이 와서 베일을 벗기고 공적 활동의 기회를 앗아간다고 본 것입니다.
결국 “베일을 벗은 모습이 누구에 의해 ‘정상적’이라고 규정되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됩니다.이 지점에서 인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밖에 없습니다. 인권이 진정으로 전 세계에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는 있는 것인지, 아니면 인권은 단지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교집합에 불과한 것인지 의문이 생기는 것이죠.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
현대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역할하고 있는 것은 1948년 정립된 세계인권선언(UDHR)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은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재연하지 않겠다는 목표 하에 정립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자행한 만행은 인간의 존엄성을 저해함으로써 비인간적인 폭력성을 경계해야 한다는 논의가 진행된 것이죠. 일련의 노력으로 인해 서구를 중심으로 국가의 경계를 초월하여 ‘보편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윤리적 가치에 대한 합의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계인권선언의 한계도 명확합니다. 근본적으로 전후질서를 구축하는 상황에서 태동되어, 현대 사회의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1993년 UN 세계인권회의에서 채택한 ‘비엔나 선언’에서 문화적 다양성을 포용하려는 노력이 있기도 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의 내용을 담는 과정에서 비서구의 목소리도 경청하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나 비서구를 배제한 채 정립된 세계인권선언이 과연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로 작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입니다. 비서구의 문화적·종교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채 정립되었던 세계인권선언은 역설적으로 서구가 비서구의 인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의 궤적을 추적해볼 때, 우리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인권은 ‘서구의 전유물’이었다는 것입니다. 세계인권선언이 논의되는 과정에서 비서구는 배제되었으며, 서구의 대칭점은 언제나 부정적인 타자로서 인식되어왔습니다. 이러한 인권에 대한 개념은 서구의 인도주의적 개입을 정당화하는 기제로 작용하여 비서구의 문화적 맥락과 주권을 경시하는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죠.
이렇듯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의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인권을 정립하는 데 있어 문화적 맥락을 포용해야 하며, 다양한 주체가 논의의 장에 들어와야 하기 때문이죠. 그러나 현실적으로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가 존재하기 어렵다고 하여 인권에 대한 논의를 포기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정립하려는 ‘당위’는 마땅하기 때문이죠. 인권을 정립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면 정의는 추구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인권을 논하는 것이 일견 공허한 것 같지만, 이러한 논의 자체가 세상을 진보시키며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세계인권선언이 없었다면, 이란의 히잡 시위 사태는 더욱 격화되어 인류의 자유와 평화를 저해시켰을 것입니다. 특히 이번 이란 시위에서 주목할 점은 이란 Z세대의 연대입니다.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남성조차도 어딘가 잘못되고 있다는 점을 느낀 것이죠. 다양한 정보를 접하고 외부세계와의 소통에 거리낌이 없는 Z세대는 불의에 대해 더욱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그들의 이익을 저버리고서라도 마음 한 켠에 있는 불쾌한 감정이 그들을 거리로 나오게 한 것이죠.
그러므로 인권에 대한 논의는 지속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권에 대한 이상적인 글로벌 스탠더드는 현실적으로 존재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또한 인권을 정립하는 시도 자체가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가 거듭된다면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게 될 것이고, 비서구 또한 주체로 참여하여 진정으로 납득할 만한 인권에 대한 논의가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란 히잡 시위가 우리에게 던지는 시사점은 인간의 생명권과 같은 ‘최소한으로 정의된 인권’은 문화적 경계를 초월하여 존재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슬람 사회의 관습을 존중하더라도, 공히 따라야 할 가치들이 존재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정의’를 이룩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일 것입니다. 칸트는 “만약 정의가 사라진다면, 더 이상 지구상에 살 가치가 없다”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정의에 ‘도달’할 수는 없지만, 이에 ‘근접’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함으로써 인권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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