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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항상 요구가 있을 때마다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으나, 이제는 전 같은 ‘벼랑끝전술’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형 3축체계 구축과 북한 정보수집 경로의 다양화 등에 기인한다.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인 북핵대응에 나서야 한다.
1990년대 이후 내내 한반도에 드리워 온 북핵 문제가 또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3월 27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핵무기 병기화사업을 지도하던 중 무기급 핵물질 생산량을 늘리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전문매체인 38 노스(38 North)는 3월 3일과 17일 촬영된 위성사진을 비교하면서 북한이 실험용 경수로를 거의 완성해 작동상태로 전환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발표했다. 또한 영변 북핵 시설에서 5메가와트(MWe)원자로는 이미 작동 중일뿐 아니라 냉각시스템에서는 냉각수가 방출된 것을 포착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미 국방부는 4월 4일 자 정례 브리핑을 통해 “현재로서는 (북핵 개발의) 징후를 보지 못했으나, (미 국방부는) 지속적으로 북핵실험과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핵 개발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미 국방부의 답변은 안심되는 부분도 있으나, 이미 1990년대부터 북핵 개발을 저지할 기회를 수차례 놓친 적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핵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로 알려져 있으며,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Nonproliferation Treaty)에서 탈퇴의사를 밝히면서부터였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미북 간 핵동결 협약(Agreed Framework)을 체결하면서 경수로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적 지원을 북한에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불법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핵동결 협약은 2002년에 파기됐으며, 북한은 10월에 제2차 핵위기를 야기한 뒤 2003년 1월에 기어이 NPT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앞서 체결한 핵동결 협약이 어디까지나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미국을 위시한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는 2003년부터 ‘6자회담’으로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고자 했고, 북한은 2005년 NPT 복귀와 함께 모든 핵무기 개발과 핵 개발 사업의 포기를 선언했다. 북한은 ‘9∙19협정’에도 불구하고 방코델타아시아(Banco Delta Asia, BDA) 은행 금융제재로 북한 자금이 동결되자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2009년에는 핵 사찰 거부 및 미사일 시험발사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자 6자회담을 탈퇴하는 동시에 두 번 다시 회담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부터 풍계리에서 본격적인 지하 핵실험에 들어갔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013년 2월 12일, 2016년 1월 6일, 2016년 9월 9일에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2017년 9월 3일에 제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특히 제6차 핵실험 때는 대외적으로 이것이 수소폭탄이었으며, 이 실험으로 핵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직후인 2018년 4월 27일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할 용의를 비치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을 받아들여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양자간 관계와 협력에 대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이 성명서에 근거하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대규모 한-미 연합연습이 모두 중단됐다. 북한은 미사일 실험 중단과 미사일 조립 시설 분해를 약속했고, 우호의 표시로 6.25 전쟁 중 전사한 미군 유해를 미국측에 송환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 2개월 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의 핵 개발 상태가 ‘심각히 우려’된다고 발표해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 의도가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됐다. 2019년 2월 27일에는 하노이에서 김정은-트럼프 간 제2차 북미회담이 성사됐지만, 북한은 영변 시설만 폐쇄하고 핵분열 물질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나머지 시설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할 것을 제안한 반면, 미측은 영변 외의 의심시설을 모두 폐쇄하여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조건으로 걸어 회담은 조기 결렬됐다. 북미 정상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다시 한번 만나 53분간 회동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으며, 이후 미-북 관계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핵을 거래용 카드로 활용해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한미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북한의 기대는 여기서 끝난 듯하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렬 뒤 더 이상 핵을 담보로 한 북미회담에 응하지 않았으며, 2021년 1월 트럼프 행정부 대신 들어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처럼 북한과 톱다운(Top-down) 대화 방식을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2022년 5월 출범한 대한민국의 윤석열 정부 역시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에 이전 정부와 달리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중단됐던 한-미 연합연습도 재개했다. 결국 트럼프와의 회담이 북미 수교와 종전선언을 이끌어 유엔군사령부(UNC)를 해체하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토대로 은근슬쩍 공식 핵 보유국의 위상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던 북한은 더 이상 대화할 상대도, 방법도 없는 상황이 됐다. 오히려 회담을 추진하면서 스스로가 절박한 입장이라는 사실만 필요 이상으로 대외적으로 노출해버린 것이다. 이후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애꿎은 실무자와 통역들이 처벌받았다는 소식으로 볼 때, 김정은 역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가 2022년 북한은 다시 핵무기를 방송에 노출하면서 ‘핵실험’ 카드를 꺼내 들어 김정일 때부터 사용해 온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다시 쓰려는 분위기다. 특히 4월 13일에 실시한 화성-18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과거 남북 관계나 대미 관계에서 북한이 우위에 서고 싶을 때마다 북핵 문제를 야기하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정일 시대에 핵 카드를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 한반도를 긴장에 몰아넣던 그 위력에 한참 못 미치는 느낌이다. 어쩌면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는지를 보는 것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접근법일지도 모른다.
첫째는 물리적인 방어 수단이 확보됐다는 것이 이전과 다른 커다란 차이점이다. 1980년대~2000년대 사이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을 앞세운 협박을 하던 시대와 달리, 현재는 미사일 방어체계가 어느 정도 구축됐다. 아직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적층(積層) 방어체계 수준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사드(THAAD)와 패트리어트 미사일, 그리고 LSAM, M-SAM으로 이어지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Korean Air and Missile Defense) 등 한국형 3축 체계(‘킬 체인’, KAMD, KMPR)가 구축되면서 핵 위협이 어느 정도 상쇄됐다.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명백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즉각적이면서도 뚜렷한 응징이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남북 간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상태 때문에 작은 충돌이 대규모 확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우려하다가 응징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도발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군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작은 도발에도 두 세배의 확실한 응징을 실시하는 것이 오히려 지속적인 도발행위와 확전 우려의 악순환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둘째는 북한의 핵 개발이 실질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변국, 특히 중국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한창 핵무기 개발 및 실험을 실시하던 2000년대~2010년대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미국과 경쟁을 시작했던 시점이고, 특히 ‘도련선(島連線)’을 설정한 뒤 남사군도(南沙群島: 스프래틀리 군도), 서사군도(西沙群島: 파라셀 군도)를 비롯한 남중국해의 도서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던 시기였다. 이때 중국은 지역 내에서 전세계적인 관심을 대신 끌어가는 북핵 문제를 적절히 활용했으며,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스스로가 북한과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국가라는 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북·중 관계의 수평화가 아닌 수직화를 원한 중국의 입장에서 ‘핵’을 보유하여 중국의 통제권을 벗어나고 동등한 입장이 되려는 데다가 예측 불가한 행동으로 경제적으로 잃을 게 많아진 중국에 불리한 위기를 야기하는 북한이 더 이상 반가울 리 없다.
셋째는 북한의 재래식 전쟁 수행 능력이 외부에 상당히 노출됐다는 점이다. 1990년대와 달리 현재는 북한의 전력과 능력이 외부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시작으로 경제 및 인프라가 초토화된 북한은 이후 핵 개발에만 매달려 국가 재건의 기회를 갖지 못했으며, 탈북자나 고위 망명자들의 증언을 통해 내부의 ‘안개’가 크게 걷힌 상태다. 이런 정보를 종합하면서 주요 주변국들은 북한에 실질적인 전쟁 실행이나 지속능력이 없다고 판단한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재래식 전력의 뒷받침이 없는 핵 보유는 북한의 기대처럼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는 실전적 ‘결전 무기’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핵무기의 보유가 또 다른 ‘고난의 행군’만을 야기하고 있음을 북한 수뇌부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몇 차례의 핵실험과 회담 시도로 북한의 정치적 의도가 노정(露呈)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핵을 보유하여 미-영-프-중-인-파키스탄 등과 어깨를 겨루는 소수 ‘핵 클럽’의 일원이 되고, 이를 통해 한국을 건너뛰고 미국, 중국과 동등한 외교적 위상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북한은 이 단계까지 도달해 스스로 미국을 직접 상대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이나 일본 정도는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한미동맹에 기반한 연합방어체계 및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 우방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하여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로는 어떤 협상도 성사되지 못하고 대북 제재만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특히 이들 우방국과 동맹국을 대북 제재와 대응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이들 국가가 행동을 함께하는 ‘규칙에 기반한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힘에 의존하는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한 자유 진영의 대응 참여나 적극적인 지원 등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던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부터는 이렇다 할 대화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모습이다. 특히 김정은은 자신의 지도력으로 한순간에 ‘강성대국’이 이룩될 것처럼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뒤라 회담 결렬 후 그의 정치력과 위상이 약화되어 뒷감당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예전에 통했던’ 수단인 핵을 통한 위협과 협박을 다시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럴수록 한-미를 위시한 주변 동맹국과 우방국이 결속하여 예전의 패턴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것이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아닐까 한다.
북한은 항상 요구가 있을 때마다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으나, 이제는 전 같은 ‘벼랑끝전술’이 통하지 않고 있다. 이는 한국형 3축체계 구축과 북한 정보수집 경로의 다양화 등에 기인한다.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국제사회와 함께 적극적인 북핵대응에 나서야 한다.
1990년대 이후 내내 한반도에 드리워 온 북핵 문제가 또다시 뜨거워지고 있다. 지난 3월 27일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핵무기 병기화사업을 지도하던 중 무기급 핵물질 생산량을 늘리도록 지시했다고 보도했다. 북한 전문매체인 38 노스(38 North)는 3월 3일과 17일 촬영된 위성사진을 비교하면서 북한이 실험용 경수로를 거의 완성해 작동상태로 전환한 것으로 의심된다고 발표했다. 또한 영변 북핵 시설에서 5메가와트(MWe)원자로는 이미 작동 중일뿐 아니라 냉각시스템에서는 냉각수가 방출된 것을 포착했다고도 덧붙였다. 이에 미 국방부는 4월 4일 자 정례 브리핑을 통해 “현재로서는 (북핵 개발의) 징후를 보지 못했으나, (미 국방부는) 지속적으로 북핵실험과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북한의 핵 개발 활동을 감시하고 있다는 미 국방부의 답변은 안심되는 부분도 있으나, 이미 1990년대부터 북핵 개발을 저지할 기회를 수차례 놓친 적이 있기 때문에 여전히 의구심을 갖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핵 개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1980년대 중반부터로 알려져 있으며, 북핵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되기 시작한 것은 1994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 Nonproliferation Treaty)에서 탈퇴의사를 밝히면서부터였다. 미국의 클린턴 행정부는 미북 간 핵동결 협약(Agreed Framework)을 체결하면서 경수로 건설을 비롯한 다양한 경제적 지원을 북한에 제공하는 대신 북한은 불법 핵무기 개발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핵동결 협약은 2002년에 파기됐으며, 북한은 10월에 제2차 핵위기를 야기한 뒤 2003년 1월에 기어이 NPT에서 탈퇴를 선언했다. 앞서 체결한 핵동결 협약이 어디까지나 핵무기 개발을 재개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목적이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에 미국을 위시한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는 2003년부터 ‘6자회담’으로 북핵 문제를 외교적으로 풀고자 했고, 북한은 2005년 NPT 복귀와 함께 모든 핵무기 개발과 핵 개발 사업의 포기를 선언했다. 북한은 ‘9∙19협정’에도 불구하고 방코델타아시아(Banco Delta Asia, BDA) 은행 금융제재로 북한 자금이 동결되자 2006년 제1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2009년에는 핵 사찰 거부 및 미사일 시험발사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자 6자회담을 탈퇴하는 동시에 두 번 다시 회담으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부터 풍계리에서 본격적인 지하 핵실험에 들어갔다. 북한은 2009년 5월 25일, 2013년 2월 12일, 2016년 1월 6일, 2016년 9월 9일에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2017년 9월 3일에 제6차 핵실험을 실시했다. 특히 제6차 핵실험 때는 대외적으로 이것이 수소폭탄이었으며, 이 실험으로 핵을 완성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평창올림픽 직후인 2018년 4월 27일에 성사된 남북정상회담에서 비핵화를 할 용의를 비치면서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을 받아들여 2018년 6월 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을 만나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양자간 관계와 협력에 대한 공동 성명을 발표했고, 이 성명서에 근거하여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을 비롯한 대규모 한-미 연합연습이 모두 중단됐다. 북한은 미사일 실험 중단과 미사일 조립 시설 분해를 약속했고, 우호의 표시로 6.25 전쟁 중 전사한 미군 유해를 미국측에 송환했다.
하지만 싱가포르 회담 2개월 만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북한의 핵 개발 상태가 ‘심각히 우려’된다고 발표해 여전히 북한의 비핵화 의도가 진심이 아닐 가능성이 제기됐다. 2019년 2월 27일에는 하노이에서 김정은-트럼프 간 제2차 북미회담이 성사됐지만, 북한은 영변 시설만 폐쇄하고 핵분열 물질을 계속 생산할 수 있는 나머지 시설을 유지하는 조건으로 미국이 대북 제재를 해제할 것을 제안한 반면, 미측은 영변 외의 의심시설을 모두 폐쇄하여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를 조건으로 걸어 회담은 조기 결렬됐다. 북미 정상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다시 한번 만나 53분간 회동했으나 이렇다 할 성과는 없었으며, 이후 미-북 관계는 더 이상의 진전이 없는 상태다. 핵을 거래용 카드로 활용해 대북 제재를 해제하고 한미관계를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북한의 기대는 여기서 끝난 듯하다.
미국의 트럼프 행정부는 하노이 회담 결렬 뒤 더 이상 핵을 담보로 한 북미회담에 응하지 않았으며, 2021년 1월 트럼프 행정부 대신 들어선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행정부처럼 북한과 톱다운(Top-down) 대화 방식을 취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한편 2022년 5월 출범한 대한민국의 윤석열 정부 역시 미사일 발사 등 북한의 도발에 이전 정부와 달리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중단됐던 한-미 연합연습도 재개했다. 결국 트럼프와의 회담이 북미 수교와 종전선언을 이끌어 유엔군사령부(UNC)를 해체하고,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토대로 은근슬쩍 공식 핵 보유국의 위상을 갖게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던 북한은 더 이상 대화할 상대도, 방법도 없는 상황이 됐다. 오히려 회담을 추진하면서 스스로가 절박한 입장이라는 사실만 필요 이상으로 대외적으로 노출해버린 것이다. 이후 두 차례 북미 정상회담에 참여했던 애꿎은 실무자와 통역들이 처벌받았다는 소식으로 볼 때, 김정은 역시 정치적으로 큰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이 이어지다가 2022년 북한은 다시 핵무기를 방송에 노출하면서 ‘핵실험’ 카드를 꺼내 들어 김정일 때부터 사용해 온 ‘벼랑 끝 전술(Brinkmanship)’을 다시 쓰려는 분위기다. 특히 4월 13일에 실시한 화성-18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는 과거 남북 관계나 대미 관계에서 북한이 우위에 서고 싶을 때마다 북핵 문제를 야기하던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김정일 시대에 핵 카드를 꺼냈다 넣었다 하면서 한반도를 긴장에 몰아넣던 그 위력에 한참 못 미치는 느낌이다. 어쩌면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는지를 보는 것이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최적의 접근법일지도 모른다.
첫째는 물리적인 방어 수단이 확보됐다는 것이 이전과 다른 커다란 차이점이다. 1980년대~2000년대 사이에 북한이 일방적으로 핵을 앞세운 협박을 하던 시대와 달리, 현재는 미사일 방어체계가 어느 정도 구축됐다. 아직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적층(積層) 방어체계 수준으로 완성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사드(THAAD)와 패트리어트 미사일, 그리고 LSAM, M-SAM으로 이어지는 한국형 미사일방어체계(KAMD: Korean Air and Missile Defense) 등 한국형 3축 체계(‘킬 체인’, KAMD, KMPR)가 구축되면서 핵 위협이 어느 정도 상쇄됐다. 이제는 이를 바탕으로 명백한 도발행위에 대해서는 즉각적이면서도 뚜렷한 응징이 따라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은 남북 간의 첨예한 군사적 대립상태 때문에 작은 충돌이 대규모 확전으로 비화하는 것을 우려하다가 응징 시기를 놓치는 경우가 많았는데, 도발에 대해서는 분명한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군이 보여줄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의 경우처럼 작은 도발에도 두 세배의 확실한 응징을 실시하는 것이 오히려 지속적인 도발행위와 확전 우려의 악순환을 막는 길이기도 하다.
둘째는 북한의 핵 개발이 실질적으로 그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주변국, 특히 중국이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한창 핵무기 개발 및 실험을 실시하던 2000년대~2010년대는 중국이 본격적으로 미국과 경쟁을 시작했던 시점이고, 특히 ‘도련선(島連線)’을 설정한 뒤 남사군도(南沙群島: 스프래틀리 군도), 서사군도(西沙群島: 파라셀 군도)를 비롯한 남중국해의 도서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던 시기였다. 이때 중국은 지역 내에서 전세계적인 관심을 대신 끌어가는 북핵 문제를 적절히 활용했으며, 중국은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스스로가 북한과 유일하게 대화가 통하는 국가라는 점을 부각했다. 하지만 북·중 관계의 수평화가 아닌 수직화를 원한 중국의 입장에서 ‘핵’을 보유하여 중국의 통제권을 벗어나고 동등한 입장이 되려는 데다가 예측 불가한 행동으로 경제적으로 잃을 게 많아진 중국에 불리한 위기를 야기하는 북한이 더 이상 반가울 리 없다.
셋째는 북한의 재래식 전쟁 수행 능력이 외부에 상당히 노출됐다는 점이다. 1990년대와 달리 현재는 북한의 전력과 능력이 외부 세계에 많이 알려졌다.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시작으로 경제 및 인프라가 초토화된 북한은 이후 핵 개발에만 매달려 국가 재건의 기회를 갖지 못했으며, 탈북자나 고위 망명자들의 증언을 통해 내부의 ‘안개’가 크게 걷힌 상태다. 이런 정보를 종합하면서 주요 주변국들은 북한에 실질적인 전쟁 실행이나 지속능력이 없다고 판단한지 오래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는 재래식 전력의 뒷받침이 없는 핵 보유는 북한의 기대처럼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재래식 전력의 열세를 만회하는 실전적 ‘결전 무기’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핵무기의 보유가 또 다른 ‘고난의 행군’만을 야기하고 있음을 북한 수뇌부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에게도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마지막은 몇 차례의 핵실험과 회담 시도로 북한의 정치적 의도가 노정(露呈)됐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은 핵을 보유하여 미-영-프-중-인-파키스탄 등과 어깨를 겨루는 소수 ‘핵 클럽’의 일원이 되고, 이를 통해 한국을 건너뛰고 미국, 중국과 동등한 외교적 위상으로 올라서는 것이다. 북한은 이 단계까지 도달해 스스로 미국을 직접 상대할 수 있게 된다면 한국이나 일본 정도는 원하는 대로 통제할 수 있게 된다고 판단하는 듯하다. 이에 대한 대응책은 한미동맹에 기반한 연합방어체계 및 우리와 가치를 공유하는 주요 우방국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것이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하여 북한이 핵을 보유한 상태로는 어떤 협상도 성사되지 못하고 대북 제재만 계속 이어지게 될 것임을 인식시켜야 한다. 특히 이들 우방국과 동맹국을 대북 제재와 대응에 동참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부터 이들 국가가 행동을 함께하는 ‘규칙에 기반한 질서’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면 현재 진행 중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비롯해, ‘힘에 의존하는 현상 변경’ 시도에 대한 자유 진영의 대응 참여나 적극적인 지원 등이다.
북미 정상회담에 큰 기대를 걸었던 북한이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부터는 이렇다 할 대화의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아 답답해하는 모습이다. 특히 김정은은 자신의 지도력으로 한순간에 ‘강성대국’이 이룩될 것처럼 대대적인 홍보를 했던 뒤라 회담 결렬 후 그의 정치력과 위상이 약화되어 뒷감당도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돌파구가 보이지 않자 ‘예전에 통했던’ 수단인 핵을 통한 위협과 협박을 다시 시도하려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럴수록 한-미를 위시한 주변 동맹국과 우방국이 결속하여 예전의 패턴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 주는 것이 한반도 핵 문제 해결의 돌파구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