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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정책의 정상화는 단순히 전 정부의 주택정책을 부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주택정책 비정상의 요체인 ‘물량주의’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주택정책의 목표를 공급물량 대신 주거안정을 달성한 가구규모에 두고, 정책대상가구를 명확히 정의하며, 지방정부의 장기계획이 주도가 되게 함으로써 주택정책의 물량주의를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십 번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거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정권교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꼽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새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주요 보도자료에서는 ‘정상화’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지난 정부의 정책이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정책들의 등장에 마냥 환영하기도 어렵다. 정권이 바뀌면 현재의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또 현재의 비정상이 정상이 될 것이 쉽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정상을 놓고서 정권마다 경쟁적으로 정책들을 만든 결과, 주거문제가 개선되어 왔다면 굳이 이의 제기할 필요가 없다. 이 지점에서 자주 들여다보는 지표 중 하나가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구입물량지수이다. 이는 한 지역의 전체 주택 중 그 지역의 중간 소득에 해당하는 가구가 구입할 수 있는 주택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이다. 2012년 서울은 32.5%였다. 100채 중 33채가 구입가능하였다. 이 수치는 계속 감소, 2021년에는 2.7%에 불과하다. 주택 100채 중 중간 소득의 가구가 구입할 수 있는 주택은 2021년에 3채로 줄어든 것이 우리 주택정책의 성적표이다.
[그림] 주택구입물량지수 (서울, 2012~2021년)
*자료: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통계시스템 – 지역별 주택구입물량지수
경쟁적으로 마련한 정책으로도 주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곧 ‘정상’은 정권교체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어떠한 정권이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단단한 비정상이 저류에 흐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은 이 저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과연 지난 주택정책 속에 자리한 이 단단한 비정상은 무엇인가? 본 고는 이를 물량주의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물량주의는 주택공급의 물량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공급계획을 집행하는 것으로 주택정책을 운영하는 것을 뜻한다. 물량 목표는 대선과정에서 후보들 간의 경쟁의 결과로, 혹은 정권 중도라도 주택문제 해결을 향한 강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설정된다. 주로 기존 정부의 실적보다 높은 수준의 물량 목표가 책정된다. 물량주의의 기원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200만 호 주택건설계획에서부터 찾을 수 있으며, 이후 모든 정부는 정파를 달리하더라도 주택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규모 공급계획을 유사하게 발표해왔다.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혹은 기울이고 있는지 숫자로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량주의는 이처럼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나 바로 이 물량주의가 주택정책의 여러 비정상을 야기한다. 첫째, 공급물량은 주거안정을 달성시키는 수단이지 목표는 아니다. 목표는 주거안정이므로, 공급된 주택에 주거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가구를 입주시켜야 목표가 달성된다. 그러나 물량주의가 중심이 되면 가구의 주거안정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공급된 주택에 실제 누가 입주하였는지, 그래서 그들의 주거불안이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구의 주거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공급을 바라보지 않고, 공급 그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아 달려가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 물량 목표는 엄밀한 수요 혹은 소요조사에 기반하지 않는다. 전술한 대로 물량 목표의 설정 근거는 기존 정부의 실적치가 된다. 즉 기존 정부가 공급했던 것보다 더 많게끔 물량 목표가 설정된다. 인구감소나 저성장, 가구분화, 재고주택의 품질 상태 등을 고려한 엄밀한 수요 조사에 기초하지 않는다. 지역내 주거불안 가구의 규모 추정과도 연계되지 않는다. 그렇게 산정된 물량이 주택정책의 최상위 목표가 되고 또 전국에 배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공급되어 미분양, 공실이 야기될 수밖에 없으며, 또 어떤 지역에서는 필요한 것보다 공급이 부족해 주택문제가 상존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셋째, 물량주의는 한정된 기간에 정해진 목표를 가장 원활히 달성할 수 있는 공급방식을 선택하게 만든다. 바람직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식은 일부 부적합한 부분이 있더라도 신속하게 추진하는 방식으로 대체된다. 예를 들어 도심 재개발보다는 사업기간이 짧은 외곽의 신개발이 주로 선택된다. 지방정부가 수립한 계획의 변경 등을 거쳐야 하는 일반법보다는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촉진법, 특별법이 활용된다. 지역의 상황을 고려한, 차별화된 수요를 반영한 주택을 공급하기보다, 전국의 상황과 수요에 표준화된 주택을 공급한다. 이는 결국 지역에서 또다른 부작용을 야기한다. 주택수요가 한정된 지방 중소도시에서 외곽의 신개발이 도심쇠퇴를 가져오기도 하며, 어렵게 공급한 주택들이 정책대상가구의 수요에 부합하지 않아 외면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넷째, 물량주의 하에서는 결코 좋은 주택이 공급될 수 없다. 가구의 입지 선호는 상대적으로 외곽보다는 도심으로 향하나, 전술하였듯이 물량주의는 외곽의 공급을 지향한다. 단기에 외곽 신개발은 광역교통시설 확충보다 앞설 수밖에 없기에, 외곽 신도시 개발은 교통문제는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지방정부의 도시계획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탓에 인근 기반시설, 편의시설과의 접근성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주거지를 만들어낸다. 분양가격이나 임대료는 지역내 정책대상가구의 주거비 부담능력과 무관하게 전국 공통의 기준으로 책정됨으로써, 결국 정책대상가구가 부담할 수 없는 주택이 되어버린다.
다섯째, 물량주의는 지역의 공간구조, 토지이용에 대한 계획적 접근을 무력화시킨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게 도시기본계획, 광역도시계획, 도종합계획, 주거종합계획 등을 수립하게 함으로써, 지역에서 향후 발생할 주택수요를 지역의 장기적인 개발축과 보전축, 기반시설 투자, 중심지 계획 등과 연관시켜 스스로 배분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물량주의는 지방정부의 계획과 무관하게 공급물량을 배분한다. 오히려 지역의 장기계획이 존재하는 곳은 이미 토지가격이 높게 형성된 탓에, 그렇지 않은 곳에 대규모 신도시 개발계획을 ‘깜짝’ 발표하기도 한다. 한정된 기간 내 물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량주의 내 공급물량에 대해 중앙정부의 강한 행정·재정적 지원이 가해진다. 이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공들여 장기 계획을 수립하기보다 중앙정부의 공급계획 발표에 해당 지역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한다. 그 결과, 지역의 주택공급에 대한 장기적 접근은 점차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 물량주의 내에서는 현재 방식이 문제가 있으므로 대안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빛을 잃는다. 설령 대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대안을 발굴하고 도입하는 것이 정해진 기간 내에 물량 목표를 달성하는데 장애로 작동할 수 있다면 크게 호응하지 않는다. 당장의 목표 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한 경로의존성이 작동한다. 해왔던 방식으로 해야 가장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처럼 정책대상가구를 구체화한 대기자명부를 통해 임대주택 입주자를 체계적으로 선정하자는 주장은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었으나, 제도 도입이 전체 임대주택 정책의 체계 개편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전혀 진도를 나가지 못한 지난 정부의 사례가 한 예이다.
주택정책에 있어서 물량주의가 야기한 결과가 이처럼 방대하기에, 물량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야말로 정상으로 회귀하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노력은 우선 정책의 명확한 목표 설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물량 목표의 달성이 아니다. 주거불안 상태에 있던 가구 중 주거안정에 이르는 가구의 규모가 주택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주택공급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주택공급이 반드시 가구의 주거안정으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에, 주택공급의 성과를 물량 목표 달성이 아니라 공급을 통한 주거안정을 달성한 가구의 규모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정책 대상가구의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주택정책이 이들 가구의 주거안정 달성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정책의 대상가구는 현재 주택시장에서 주거불안을 경험하고 있거나, 주거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가구로 정의될 수 있다. 현재의 주택시장에서 가구의 경제력으로 최소한의 품질에 해당하는 주택을 부담할 수 없는 가구들이다. 여기에서의 부담은 주택임차에 대한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주택구입에 대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각 가구의 주거지원의 필요성을 평가, 주거지원의 필요도가 높은 가구가 정책대상가구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 가구가 직접 신청을 해야 입주가능한 현재의 임대주택 배분 방식이나 고령 무주택가구가 우선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분양주택 배분 방식은 이 점에서 대대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전술한 것처럼 대규모 임대주택 재고를 보유한 국가들 대부분이 운영하고 있는 대기자명부를 도입·활용하는 것은 주택정책의 성과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지역의 정책대상가구가 원하는 좋은 주택을 공급하려면 지역 차원의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지역의 정책대상가구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지방정부가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가 공급물량을 늘리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지방정부의 장기적 접근에 포함된 공급계획, 장기적 접근에 부합하는 공급계획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도심과의 접근성, 광역교통망, 기타 기반시설, 편의시설 등의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주택이 공급될 수 있다. 공급되는 주택은 ‘지역적(local)’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지역적인 주택의 공급을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행정적·제도적·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정상화의 핵심 중 하나이다.
요약하자면 주택정책의 정상화는 단순히 전 정부의 주택정책을 부정하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정상’을 위해 벗어나야 할 ‘비정상’의 요체는 주택공급의 물량주의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모순적인 사실은 물량주의의 한계를 인지하고 이를 탈피하려는 시도는 목표 물량 달성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물량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가 진정 주택정책의 ‘정상화’를 도모한다면, 이 어려운 도전을 시도해야 한다.
주택정책의 정상화는 단순히 전 정부의 주택정책을 부정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주택정책 비정상의 요체인 ‘물량주의’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주택정책의 목표를 공급물량 대신 주거안정을 달성한 가구규모에 두고, 정책대상가구를 명확히 정의하며, 지방정부의 장기계획이 주도가 되게 함으로써 주택정책의 물량주의를 극복해나가야 할 것이다.
지난 정부의 주택정책에 대해서는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수십 번의 대책 발표에도 불구하고 주거안정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이다. 정권교체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로 부동산정책의 실패를 꼽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새 정부가 지금까지 발표한 주요 보도자료에서는 ‘정상화’라는 단어가 빈번하게 등장한다. 지난 정부의 정책이 비정상적이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상적’인 정책들의 등장에 마냥 환영하기도 어렵다. 정권이 바뀌면 현재의 정상이 비정상이 되고, 또 현재의 비정상이 정상이 될 것이 쉽게 그려지기 때문이다.
정상을 놓고서 정권마다 경쟁적으로 정책들을 만든 결과, 주거문제가 개선되어 왔다면 굳이 이의 제기할 필요가 없다. 이 지점에서 자주 들여다보는 지표 중 하나가 한국주택금융공사의 주택구입물량지수이다. 이는 한 지역의 전체 주택 중 그 지역의 중간 소득에 해당하는 가구가 구입할 수 있는 주택이 과연 어느 정도인지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이다. 2012년 서울은 32.5%였다. 100채 중 33채가 구입가능하였다. 이 수치는 계속 감소, 2021년에는 2.7%에 불과하다. 주택 100채 중 중간 소득의 가구가 구입할 수 있는 주택은 2021년에 3채로 줄어든 것이 우리 주택정책의 성적표이다.
[그림] 주택구입물량지수 (서울, 2012~2021년)
*자료: 한국주택금융공사 주택금융통계시스템 – 지역별 주택구입물량지수
경쟁적으로 마련한 정책으로도 주택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곧 ‘정상’은 정권교체만으로 달성하기 어려움을 시사한다. 어떠한 정권이라도 자유로울 수 없는 단단한 비정상이 저류에 흐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상은 이 저류에서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과연 지난 주택정책 속에 자리한 이 단단한 비정상은 무엇인가? 본 고는 이를 물량주의를 중심으로 다루고자 한다.
물량주의는 주택공급의 물량 목표를 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공급계획을 집행하는 것으로 주택정책을 운영하는 것을 뜻한다. 물량 목표는 대선과정에서 후보들 간의 경쟁의 결과로, 혹은 정권 중도라도 주택문제 해결을 향한 강한 정치적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수단으로 설정된다. 주로 기존 정부의 실적보다 높은 수준의 물량 목표가 책정된다. 물량주의의 기원은 1988년 노태우 정부의 200만 호 주택건설계획에서부터 찾을 수 있으며, 이후 모든 정부는 정파를 달리하더라도 주택문제에 대한 사회적 불만을 잠재우기 위해 대규모 공급계획을 유사하게 발표해왔다. 주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인지, 혹은 기울이고 있는지 숫자로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물량주의는 이처럼 각광을 받아왔다.
그러나 바로 이 물량주의가 주택정책의 여러 비정상을 야기한다. 첫째, 공급물량은 주거안정을 달성시키는 수단이지 목표는 아니다. 목표는 주거안정이므로, 공급된 주택에 주거불안을 경험하고 있는 가구를 입주시켜야 목표가 달성된다. 그러나 물량주의가 중심이 되면 가구의 주거안정은 부차적인 것이 되어버린다. 공급된 주택에 실제 누가 입주하였는지, 그래서 그들의 주거불안이 해결되었는지에 대한 점검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구의 주거불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공급을 바라보지 않고, 공급 그 자체를 정책 목표로 삼아 달려가게끔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 물량 목표는 엄밀한 수요 혹은 소요조사에 기반하지 않는다. 전술한 대로 물량 목표의 설정 근거는 기존 정부의 실적치가 된다. 즉 기존 정부가 공급했던 것보다 더 많게끔 물량 목표가 설정된다. 인구감소나 저성장, 가구분화, 재고주택의 품질 상태 등을 고려한 엄밀한 수요 조사에 기초하지 않는다. 지역내 주거불안 가구의 규모 추정과도 연계되지 않는다. 그렇게 산정된 물량이 주택정책의 최상위 목표가 되고 또 전국에 배분된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지역에서는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이 공급되어 미분양, 공실이 야기될 수밖에 없으며, 또 어떤 지역에서는 필요한 것보다 공급이 부족해 주택문제가 상존하는 결과를 낳을 수밖에 없다.
셋째, 물량주의는 한정된 기간에 정해진 목표를 가장 원활히 달성할 수 있는 공급방식을 선택하게 만든다. 바람직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리는 방식은 일부 부적합한 부분이 있더라도 신속하게 추진하는 방식으로 대체된다. 예를 들어 도심 재개발보다는 사업기간이 짧은 외곽의 신개발이 주로 선택된다. 지방정부가 수립한 계획의 변경 등을 거쳐야 하는 일반법보다는 중앙정부의 결정으로 신속하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촉진법, 특별법이 활용된다. 지역의 상황을 고려한, 차별화된 수요를 반영한 주택을 공급하기보다, 전국의 상황과 수요에 표준화된 주택을 공급한다. 이는 결국 지역에서 또다른 부작용을 야기한다. 주택수요가 한정된 지방 중소도시에서 외곽의 신개발이 도심쇠퇴를 가져오기도 하며, 어렵게 공급한 주택들이 정책대상가구의 수요에 부합하지 않아 외면을 받기도 하는 것이다.
넷째, 물량주의 하에서는 결코 좋은 주택이 공급될 수 없다. 가구의 입지 선호는 상대적으로 외곽보다는 도심으로 향하나, 전술하였듯이 물량주의는 외곽의 공급을 지향한다. 단기에 외곽 신개발은 광역교통시설 확충보다 앞설 수밖에 없기에, 외곽 신도시 개발은 교통문제는 필연적으로 야기한다. 지방정부의 도시계획과 무관하게 진행되는 탓에 인근 기반시설, 편의시설과의 접근성이 전반적으로 열악한 주거지를 만들어낸다. 분양가격이나 임대료는 지역내 정책대상가구의 주거비 부담능력과 무관하게 전국 공통의 기준으로 책정됨으로써, 결국 정책대상가구가 부담할 수 없는 주택이 되어버린다.
다섯째, 물량주의는 지역의 공간구조, 토지이용에 대한 계획적 접근을 무력화시킨다. 중앙정부는 지방정부에게 도시기본계획, 광역도시계획, 도종합계획, 주거종합계획 등을 수립하게 함으로써, 지역에서 향후 발생할 주택수요를 지역의 장기적인 개발축과 보전축, 기반시설 투자, 중심지 계획 등과 연관시켜 스스로 배분하게 하고 있다. 그러나 물량주의는 지방정부의 계획과 무관하게 공급물량을 배분한다. 오히려 지역의 장기계획이 존재하는 곳은 이미 토지가격이 높게 형성된 탓에, 그렇지 않은 곳에 대규모 신도시 개발계획을 ‘깜짝’ 발표하기도 한다. 한정된 기간 내 물량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물량주의 내 공급물량에 대해 중앙정부의 강한 행정·재정적 지원이 가해진다. 이 상황에서 지방정부는 공들여 장기 계획을 수립하기보다 중앙정부의 공급계획 발표에 해당 지역이 포함되는 방식으로 주택을 공급한다. 그 결과, 지역의 주택공급에 대한 장기적 접근은 점차 힘을 잃게 되는 것이다.
여섯째, 물량주의 내에서는 현재 방식이 문제가 있으므로 대안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빛을 잃는다. 설령 대안의 필요성에 공감하더라도 대안을 발굴하고 도입하는 것이 정해진 기간 내에 물량 목표를 달성하는데 장애로 작동할 수 있다면 크게 호응하지 않는다. 당장의 목표 달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강한 경로의존성이 작동한다. 해왔던 방식으로 해야 가장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국가들처럼 정책대상가구를 구체화한 대기자명부를 통해 임대주택 입주자를 체계적으로 선정하자는 주장은 정부의 국정과제에 포함되었으나, 제도 도입이 전체 임대주택 정책의 체계 개편을 요구한다는 이유로 전혀 진도를 나가지 못한 지난 정부의 사례가 한 예이다.
주택정책에 있어서 물량주의가 야기한 결과가 이처럼 방대하기에, 물량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야말로 정상으로 회귀하려는 노력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 노력은 우선 정책의 명확한 목표 설정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주택정책의 목표는 물량 목표의 달성이 아니다. 주거불안 상태에 있던 가구 중 주거안정에 이르는 가구의 규모가 주택정책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 중 하나로 주택공급을 바라봐야 한다. 그리고 주택공급이 반드시 가구의 주거안정으로 귀결되지 않기 때문에, 주택공급의 성과를 물량 목표 달성이 아니라 공급을 통한 주거안정을 달성한 가구의 규모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주택정책 대상가구의 명확한 정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주택정책이 이들 가구의 주거안정 달성으로 초점을 맞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주택정책의 대상가구는 현재 주택시장에서 주거불안을 경험하고 있거나, 주거불안을 경험할 가능성이 높은 가구로 정의될 수 있다. 현재의 주택시장에서 가구의 경제력으로 최소한의 품질에 해당하는 주택을 부담할 수 없는 가구들이다. 여기에서의 부담은 주택임차에 대한 부담이 될 수도 있고, 주택구입에 대한 부담이 될 수도 있다. 각 가구의 주거지원의 필요성을 평가, 주거지원의 필요도가 높은 가구가 정책대상가구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확립되어야 한다. 가구가 직접 신청을 해야 입주가능한 현재의 임대주택 배분 방식이나 고령 무주택가구가 우선될 수밖에 없는 현재의 분양주택 배분 방식은 이 점에서 대대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전술한 것처럼 대규모 임대주택 재고를 보유한 국가들 대부분이 운영하고 있는 대기자명부를 도입·활용하는 것은 주택정책의 성과를 크게 개선할 수 있다.
지역의 정책대상가구가 원하는 좋은 주택을 공급하려면 지역 차원의 장기계획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지방정부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지역의 정책대상가구가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대해서도 지방정부가 더 잘 알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가 공급물량을 늘리고자 한다면, 이와 같은 지방정부의 장기적 접근에 포함된 공급계획, 장기적 접근에 부합하는 공급계획에 힘을 실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 도심과의 접근성, 광역교통망, 기타 기반시설, 편의시설 등의 측면에서 만족할 만한 주택이 공급될 수 있다. 공급되는 주택은 ‘지역적(local)’일 수밖에 없음을 인지하고, 지역적인 주택의 공급을 지방정부가 주도하고 중앙정부가 행정적·제도적·재정적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야말로 정상화의 핵심 중 하나이다.
요약하자면 주택정책의 정상화는 단순히 전 정부의 주택정책을 부정하는 것에서 머물러서는 안된다. ‘정상’을 위해 벗어나야 할 ‘비정상’의 요체는 주택공급의 물량주의임을 기억하여야 한다. 모순적인 사실은 물량주의의 한계를 인지하고 이를 탈피하려는 시도는 목표 물량 달성에 기여하지 못하므로 물량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한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번 정부가 진정 주택정책의 ‘정상화’를 도모한다면, 이 어려운 도전을 시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