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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꾸방 싯떼이루?”
“나무즌 파이크 싯떼이루?”
일본에서 유학한 필자에겐 잊지 못할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비꾸방', ‘나무즌 파이크'. 유학 초창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넛 가게에서 이런저런 일본어 굴욕을 당하며 어학 실력을 늘려가고 있던 필자는 알 지(知) 자를 쓰며 ‘알고 있어’라는 의미를 가진 ‘싯떼이루'와 함께, 툭 등장한 ‘비꾸방’이라는 괴어를 듣고는 바로 이렇게 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응! 알지, 우리 가게에서 고기만두도 팔어."
고기만두를 일본어로 ‘니꾸망’이라고 하는데, ‘니꾸망’이 아니라 ‘비꾸방’이라고 몇 번이나 거듭 말하는 일본인 친구의 발음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듣다가, 그것이 영단어 ‘big bang’의 일본식 발음이었단 걸 깨닫는 순간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그것이 당시 한창 일본 열도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던 한류 아이돌 ‘빅뱅'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도 그칠 줄 모르는 한류 붐 열기 덕분에 자동으로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놀라운 단어가 바로 ‘나무즌 파이크'.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 미술계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일본식 발음이었습니다. 한국어의 받침 발음에 취약한 일본 사람들은 ‘남준’은 길게 늘려서, 또 ‘백’의 영어식 표기인 ‘Paik’을 ‘파이크’라고 발음하는 모양입니다. 백남준 작가와 일본의 인연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깊습니다. 그는 동경예술대학에서 공부했고, 또한 뉴욕 시절의 일부를 함께 한 일본인 예술가 구보타 시게코와 결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미술작가들에게도 우리 못지않게 나무즌 파이크 -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입니다. 마치 한때 일본 리그에서 뛰었던 박지성 선수가 이룬 유럽 축구 무대의 성공을 향해 일본인들 또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시절 이후로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도 잊지 못할 괴어 ‘비꾸방'과 ‘나무즌 파이크'가 바로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대표할 만큼 아주 중요한 단어였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흘러온 K Culture의 변화를 되짚어보며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무즌 파이크’의 추억으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올해 2022년은 백남준 작가(1932-2006)가 태어난 지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때문인지 올해는 한 해의 출발부터 미술계에 그의 명성에 걸맞은 소식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지난 1월 울산시립미술관은 오랜 준비 끝에 ‘기술 기반의 미래형 미술관’이란 비전을 내세우며 야심차게 개관하였고, 166대의 텔레비전을 거북 모양으로 형상화한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품전에 당당하게 소개하면서 그들의 의지를 알렸습니다.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 아트센터 또한 올여름 ‘바로크 백남준’이라는 전시를 열면서 그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작가의 시그니처인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면모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시스틴 성당>(1993), <바로크 레이저>(1995)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가장 원시적인 기술인 촛불부터 현대의 레이저까지, 또 소음, 퍼포먼스, 건축과 같은 다양한 요소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고려하였던, 마치 바로크 시대의 종합 예술과도 같은 그의 작품 세계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역시 11월에 들어서 오픈한 ‘백남준 효과'라는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적 성취와 그가 한국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에 앞서 지난 9월,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과천관의 상징인 <다다익선>(1988)이 장장 3년여에 걸친 보존 및 복원 사업을 무사히 마치고 점등 행사를 통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2월 전면적인 보수를 위해 가동을 멈추고, 그 이듬해에 구체적 계획과 함께 시작한 이 사업은 공교롭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멈추었다가 다시 활력을 되찾는 과정을 겪는 우리의 지난 3년과 닮아있습니다. 긴긴 겨울잠을 잔 거인이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코로나 기간 동안 미술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현장 경험이 중요한 각종 전시나 공연 산업이 위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화 예술의 빙하기 동안 K Culture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빛을 발하며 예상 밖의 선전을 합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된 2020년 여름, 힘든 시기를 위로코자 한 곡만 파격적으로 먼저 발표했던 BTS의 노래 <Dynamite>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정상을 지키는 기염을 토하며, 그들을 다른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영화 기생충(2019)의 성공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K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코로나 시국 동안 오히려 날개를 달게 된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산업의 부흥과 함께 탄력을 받았습니다. <이태원 클라쓰>, <사이코지만 괜찮아>와 같이 TV 채널과 동시에 소개되면서, 나라 안팎으로 큰 인기를 끄는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정세랑 작가의 이색적인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과 같은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발굴 및드라마화되어 세계인의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정점에서 K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잭팟을 터뜨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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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기간 동안 달궈진 미술 시장의 열기도 주목할 만합니다. 해외여행 등 나라 밖으로의 지출이 강제로 막혀버린 시기에 미술 작품은 유망한 투자 자산으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KIAF 등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들은 매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이와 같은 호황이 계속되면서, 올해에는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명성이 자자한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가 한국에 상륙하여, KIAF와 함께 동시에 개최되기도 하였습니다. 아트페어의 성공을 단순하게 미술 작품의 자산화나 부의 흐름의 이동에만 국한하여 바라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행과 같이 바깥 세계의 탐험으로 향하던 취향 모색의 방향이 내가 머무는 공간을 둘러보는 방식으로도 집중하게 되었고, 또 미술 작품이 세련된 공간을 항유하고싶은 2030 젊은 층의 욕망을 자극하며, 최근 몇 년간 다양한 형태의 전시 공간이 서울 도처에 우후죽순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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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 문화 예술계의 현재를 돌이켜보다 보니, 문득 평창 동계 올림픽의 폐막식 때 그룹 EXO의 멤버 카이가 세련된 검은 한복을 입고, 꽹과리 연주자와 함께 추던 춤선이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이 퍼포먼스를 소개하는 방송 자막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타악기와 전자 드럼의 비트가 어우러지며~, 최소한의 선과 여백이 조화를 이루는 드로잉 작품과 연동되며 K-Pop과 현대미술이 융합된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또한 현대차에서 준비한 수소 전기차 테마관도 기억합니다. 미술의 보여주기 방식을 활용하여 웬만한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보다 훨씬 더 뛰어난 퀄리티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표현한 전시장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한국 미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었는데, 들어갔다가 나오는 동안 기억에 남은 것은 ‘백남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밖에 없었습니다. 카이의 퍼포먼스와 현대차의 테마관은 응용력이 뛰어난 한국인의 힘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당시에 미술계보다 미술의 힘을 더 잘 활용하는 것만 같은 다른 장르의 성과물들을 보면서 복잡 미묘한 심정 속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미술 빼기 백남준) 을 하면 무엇이 남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는 곳이 지금까지는 이웃 나라들의 움직임이었습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본 팝아트의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지난 2005년 뉴욕에 위치한 제팬 소사이어티에서 발표한 ‘리틀 보이 : 폭발하는 일본의 서브컬처아트전’입니다. 우키요에부터 일본 망가 산업을 거쳐 헬로 키티까지 지난 100여년서브컬처 아트전’입니다.. 미쳤던 일본식 서브컬처 문화를 ‘수퍼 플랫'이란 말로 압축하여 소개하였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이름을 딴 도발적인 제목으로 미국의 경제 문화 수도인 뉴욕 한복판에서 당당히 포효하였습니다. 또 지난 10여년간 힘을 키우며 아시아의 미술 거점으로 새롭게 대두한 싱가폴의 경우도 참고할 만합니다. 지난 10월 중순에 개최한 제7회 싱가포르 비엔날레는 비엔날레 형식이 21세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비엔날레 타이틀에 사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들이 고른 ‘나타샤 - Natasha’란 이름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나타샤 싱가폴비엔날레> 출처: biennialfoundation
이제 우리도 한류를 필두로 한 대중문화 예술의 전 세계적 영향력과 함께 찾아온 한국미술의 봄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가을 아트페어 기간 동안에는 한국 갤러리들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즈 아트페어를 통해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갤러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깊이를 더하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초, 성황리에 막을 내린 부산비엔날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1회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는 해외의 굵직한 인사 대신에 15년 전 비엔날레의 실무자로 참여했던 김해주 아트선제센터 부관장을 전시감독으로서 이례적으로 발탁하였습니다. 이는 새로운 전통의 씨앗을 뿌림과 동시에 한국비엔날레가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치열한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백남준'의 이름을 대체할 새로운 괴어를 들을 날이 머지않은 미래에 찾아오겠지요. 백남준의 신화와 한국 대중문화 예술의 힘에 감사함을 느끼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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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꾸방 싯떼이루?”
“나무즌 파이크 싯떼이루?”
일본에서 유학한 필자에겐 잊지 못할 두 개의 단어가 있습니다. ‘비꾸방', ‘나무즌 파이크'. 유학 초창기에 아르바이트를 하던 도넛 가게에서 이런저런 일본어 굴욕을 당하며 어학 실력을 늘려가고 있던 필자는 알 지(知) 자를 쓰며 ‘알고 있어’라는 의미를 가진 ‘싯떼이루'와 함께, 툭 등장한 ‘비꾸방’이라는 괴어를 듣고는 바로 이렇게 답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응! 알지, 우리 가게에서 고기만두도 팔어."
고기만두를 일본어로 ‘니꾸망’이라고 하는데, ‘니꾸망’이 아니라 ‘비꾸방’이라고 몇 번이나 거듭 말하는 일본인 친구의 발음을 열심히 귀 기울여 듣다가, 그것이 영단어 ‘big bang’의 일본식 발음이었단 걸 깨닫는 순간 크게 웃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바로 그것이 당시 한창 일본 열도에서 인기를 끌고 있었던 한류 아이돌 ‘빅뱅'을 가리키는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대미술을 좀 더 깊이 알기 위해 진학한 대학원에서도 그칠 줄 모르는 한류 붐 열기 덕분에 자동으로 한국 문화 전도사가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맞닥뜨린 놀라운 단어가 바로 ‘나무즌 파이크'.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 미술계의 거장이자 세계적인 아티스트 백남준의 일본식 발음이었습니다. 한국어의 받침 발음에 취약한 일본 사람들은 ‘남준’은 길게 늘려서, 또 ‘백’의 영어식 표기인 ‘Paik’을 ‘파이크’라고 발음하는 모양입니다. 백남준 작가와 일본의 인연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이 깊습니다. 그는 동경예술대학에서 공부했고, 또한 뉴욕 시절의 일부를 함께 한 일본인 예술가 구보타 시게코와 결혼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본의 미술작가들에게도 우리 못지않게 나무즌 파이크 - 백남준이라는 이름이 존경과 자부심의 대상입니다. 마치 한때 일본 리그에서 뛰었던 박지성 선수가 이룬 유럽 축구 무대의 성공을 향해 일본인들 또한 자부심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 시절 이후로 시간이 제법 흘렀지만 아직도 잊지 못할 괴어 ‘비꾸방'과 ‘나무즌 파이크'가 바로 한국의 문화 정체성을 대표할 만큼 아주 중요한 단어였다는 것을 지난 몇 년간 흘러온 K Culture의 변화를 되짚어보며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무즌 파이크’의 추억으로부터 10년 정도 지난 올해 2022년은 백남준 작가(1932-2006)가 태어난 지 9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때문인지 올해는 한 해의 출발부터 미술계에 그의 명성에 걸맞은 소식들이 울려 퍼졌습니다. 지난 1월 울산시립미술관은 오랜 준비 끝에 ‘기술 기반의 미래형 미술관’이란 비전을 내세우며 야심차게 개관하였고, 166대의 텔레비전을 거북 모양으로 형상화한 백남준의 작품을 소장품전에 당당하게 소개하면서 그들의 의지를 알렸습니다. 용인에 위치한 백남준 아트센터 또한 올여름 ‘바로크 백남준’이라는 전시를 열면서 그의 탄생 9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이 전시에서는 작가의 시그니처인 ‘텔레비전’뿐만 아니라, 그의 다른 면모 또한 볼 수 있습니다. <시스틴 성당>(1993), <바로크 레이저>(1995)와 같은 작품들을 통해, 가장 원시적인 기술인 촛불부터 현대의 레이저까지, 또 소음, 퍼포먼스, 건축과 같은 다양한 요소의 복합적 상호작용을 고려하였던, 마치 바로크 시대의 종합 예술과도 같은 그의 작품 세계의 깊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역시 11월에 들어서 오픈한 ‘백남준 효과'라는 전시를 통해 그의 예술적 성취와 그가 한국 현대미술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고자 합니다. 그에 앞서 지난 9월, 백남준의 대표작이자 과천관의 상징인 <다다익선>(1988)이 장장 3년여에 걸친 보존 및 복원 사업을 무사히 마치고 점등 행사를 통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018년 2월 전면적인 보수를 위해 가동을 멈추고, 그 이듬해에 구체적 계획과 함께 시작한 이 사업은 공교롭게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모든 것이 멈추었다가 다시 활력을 되찾는 과정을 겪는 우리의 지난 3년과 닮아있습니다. 긴긴 겨울잠을 잔 거인이 이제 다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고 할까요.
코로나 기간 동안 미술계뿐만 아니라 대중문화 예술 분야 전반에 걸쳐, 현장 경험이 중요한 각종 전시나 공연 산업이 위축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문화 예술의 빙하기 동안 K Culture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빛을 발하며 예상 밖의 선전을 합니다. 코로나가 전 세계로 확산된 2020년 여름, 힘든 시기를 위로코자 한 곡만 파격적으로 먼저 발표했던 BTS의 노래 <Dynamite>는 미국 빌보드 차트에서 3주간 정상을 지키는 기염을 토하며, 그들을 다른 반열에 올려놓았습니다. 영화 기생충(2019)의 성공과 함께 주목받기 시작한 K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코로나 시국 동안 오히려 날개를 달게 된 넷플릭스와 같은 OTT 산업의 부흥과 함께 탄력을 받았습니다. <이태원 클라쓰>, <사이코지만 괜찮아>와 같이 TV 채널과 동시에 소개되면서, 나라 안팎으로 큰 인기를 끄는 드라마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고, 정세랑 작가의 이색적인 소설 <보건교사 안은영>과 같은 작품이 넷플릭스를 통해 발굴 및드라마화되어 세계인의 이목을 끌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런 현상의 정점에서 K 드라마는 <오징어 게임>이라는 잭팟을 터뜨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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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기간 동안 달궈진 미술 시장의 열기도 주목할 만합니다. 해외여행 등 나라 밖으로의 지출이 강제로 막혀버린 시기에 미술 작품은 유망한 투자 자산으로 각광받기 시작했고, KIAF 등 한국을 대표하는 아트페어들은 매해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이와 같은 호황이 계속되면서, 올해에는 세계 3대 아트페어로 명성이 자자한 영국의 프리즈 아트페어가 한국에 상륙하여, KIAF와 함께 동시에 개최되기도 하였습니다. 아트페어의 성공을 단순하게 미술 작품의 자산화나 부의 흐름의 이동에만 국한하여 바라볼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여행과 같이 바깥 세계의 탐험으로 향하던 취향 모색의 방향이 내가 머무는 공간을 둘러보는 방식으로도 집중하게 되었고, 또 미술 작품이 세련된 공간을 항유하고싶은 2030 젊은 층의 욕망을 자극하며, 최근 몇 년간 다양한 형태의 전시 공간이 서울 도처에 우후죽순 늘어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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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한국 문화 예술계의 현재를 돌이켜보다 보니, 문득 평창 동계 올림픽의 폐막식 때 그룹 EXO의 멤버 카이가 세련된 검은 한복을 입고, 꽹과리 연주자와 함께 추던 춤선이 뇌리를 스쳐 지나갑니다. 이 퍼포먼스를 소개하는 방송 자막에는 이렇게 쓰여있었습니다. ‘한국의 전통 타악기와 전자 드럼의 비트가 어우러지며~, 최소한의 선과 여백이 조화를 이루는 드로잉 작품과 연동되며 K-Pop과 현대미술이 융합된 새로운 무대를 선보인다.’ 또한 현대차에서 준비한 수소 전기차 테마관도 기억합니다. 미술의 보여주기 방식을 활용하여 웬만한 블록버스터 미술 전시보다 훨씬 더 뛰어난 퀄리티로 한국의 자동차 산업의 미래를 표현한 전시장을 바라보면서 저절로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한국 미술의 현재를 보여주는 전시관이 있었는데, 들어갔다가 나오는 동안 기억에 남은 것은 ‘백남준'이라는 이름 세 글자밖에 없었습니다. 카이의 퍼포먼스와 현대차의 테마관은 응용력이 뛰어난 한국인의 힘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입니다. 당시에 미술계보다 미술의 힘을 더 잘 활용하는 것만 같은 다른 장르의 성과물들을 보면서 복잡 미묘한 심정 속에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국미술 빼기 백남준) 을 하면 무엇이 남을까?”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자연스럽게 시선을 돌리는 곳이 지금까지는 이웃 나라들의 움직임이었습니다.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일본 팝아트의 거장 무라카미 다카시가 지난 2005년 뉴욕에 위치한 제팬 소사이어티에서 발표한 ‘리틀 보이 : 폭발하는 일본의 서브컬처아트전’입니다. 우키요에부터 일본 망가 산업을 거쳐 헬로 키티까지 지난 100여년서브컬처 아트전’입니다.. 미쳤던 일본식 서브컬처 문화를 ‘수퍼 플랫'이란 말로 압축하여 소개하였고,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이름을 딴 도발적인 제목으로 미국의 경제 문화 수도인 뉴욕 한복판에서 당당히 포효하였습니다. 또 지난 10여년간 힘을 키우며 아시아의 미술 거점으로 새롭게 대두한 싱가폴의 경우도 참고할 만합니다. 지난 10월 중순에 개최한 제7회 싱가포르 비엔날레는 비엔날레 형식이 21세기 자본주의를 살아가는 개개인의 삶에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를 고민합니다. 그러한 생각을 담아내기 위한 방편으로, 비엔날레 타이틀에 사람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들이 고른 ‘나타샤 - Natasha’란 이름은 전 세계 누구에게나 친숙하고 쉽게 발음할 수 있는 이름입니다.
<나타샤 싱가폴비엔날레> 출처: biennialfoundation
이제 우리도 한류를 필두로 한 대중문화 예술의 전 세계적 영향력과 함께 찾아온 한국미술의 봄을 보며 새로운 희망을 품을 수 있습니다. 가을 아트페어 기간 동안에는 한국 갤러리들의 변화를 위한 움직임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프리즈 아트페어를 통해 한국을 찾은 세계적인 갤러리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를 하면서 깊이를 더하려는 노력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11월 초, 성황리에 막을 내린 부산비엔날레도 마찬가지입니다. 제11회 부산비엔날레 ‘물결 위 우리'는 해외의 굵직한 인사 대신에 15년 전 비엔날레의 실무자로 참여했던 김해주 아트선제센터 부관장을 전시감독으로서 이례적으로 발탁하였습니다. 이는 새로운 전통의 씨앗을 뿌림과 동시에 한국비엔날레가 스스로 성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런 치열한 노력들이 쌓이다 보면, ‘백남준'의 이름을 대체할 새로운 괴어를 들을 날이 머지않은 미래에 찾아오겠지요. 백남준의 신화와 한국 대중문화 예술의 힘에 감사함을 느끼는 계절입니다.
🔎위 텍스트를 누르면 해당 에디터의 프로필을 볼 수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