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민주주의의 점진적 후퇴(democratic backsliding)는 전세계적 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매년 국가들의 자유 수준을 평가하는 프리덤하우스(Freedom House)는 2022년 세계자유보고서에서 “전세계적 자유가 직접적인 위협에 직면했다”고 밝혔고, 민주주의 다양성 연구소(V-Dem)의 2023년 연구보고서는 2022년 현재 전 세계의 시민이 평균적으로 맞이하고 있는 민주주의 수준은 1986년 수준으로 하락하여 30여년 넘게 진행되었던 민주주의 발전이 지난 10년동안 사라졌다고 평가하였다. 아래 V-Dem의 그림에서도 볼 수 있다시피 세계적 민주주의 수준이 2000년 중반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꾸준히 감소해왔다. 게다가 민주주의의 수준 하락은 세계 여러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고, 신생민주주의 국가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고 여겨지던 서구민주주의 국가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프리덤하우스에 따르면 2005년부터16년 연속으로 한 해 자유 점수가 상승한 국가보다 감소한 국가가 더 많다. 물론 민주주의 쇠퇴가 얼마나 심각한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현재 논쟁이 진행중이지만(Treisman 2023), 20세기 후반의 민주화 물결에서 비롯된 전지구적인 민주주의 확산과 증진에 낙관적 희망이 사라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데이터 출처: V-Dem Democracy Report 2023, 10. 좌측 그래프는 국가별 평균을, 우측 그래프는 국가별 인구수를 가중치로 한 가중평균을 보여줌.
이러한 민주주의 수준 하락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점진적 후퇴와 기존 권위주의 국가에서 권위주의가 강화되는 현상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특히 민주주의 후퇴에 주목하는 이유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벌어진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민주주의가 붕괴되었지만, 최근에는 주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행정부 수반에 의해 붕괴된다는 차이점을 지닌다(Bermeo 2016; Haggard and Kaufman 2021). 민주주의 후퇴를 야기한 대표적인 지도자로는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대통령, 헝가리의 오반 총리, 폴란드의 카친스키 총리,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브라질의 보나우로소 대통령, 인도의 모디 총리가 있다.
물론 과거에도 지도자가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중지시키는 소위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처럼 친위쿠데타의 경우 민주주의 붕괴는 즉각적이고 뚜렷하게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민주주의 후퇴는 과거와는 달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합법적 수단을 활용해 자신에 대한 입법부, 사법부, 시민사회에 의한 견제와 감시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키고 반대세력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민주주의 퇴조가 점진적으로 서서히 일어나고, 지도자와 여당이 의회를 장악한 뒤 입법을 통해 행정권력 집중화(executive aggrandizement)를 시도하기 때문에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바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을 지닌다(Bermeo 2016; Haggard and Kaufman 2021). 행정권력의 지속적 집중화는 견제와 균형, 사법부의 독립성, 헌정주의를 무너뜨리고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위협하여 민주주의 질의 하락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베네주엘라나 헝가리처럼 민주주의가 붕괴되어 권위주의체제로 이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은 무엇인가? 학자들은 다양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언급되는 원인 중 하나는 정치양극화다(Haggard and Kaufman 2021). 많은 국가에서 정치엘리트 간의 이념적 차이가 증가하였고, 동시에 지지하는 정당과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 차이도 증가하였다. 이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증대할수록 시민들은 당파성을 강조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을 민주주의 규범과 제도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게 된다. 따라서 시민들은 지도자들에 의한 행정권력 집중을 더 용인하게 되고, 집권세력은 시민들로부터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견제와 균형 원칙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Graham and Svolik 2020). 민주주의의 점진적 후퇴의 또다른 원인으로 여겨지는 요인은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사회를 순수한 대중과 부패한 엘리트라는 두 개의 동질적이고 적대적인 집단으로 구분하고 정치는 대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보는 이념’ (Mudde 2004, 543)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포퓰리즘은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상정하는 다원주의와 이를 매개하고 중재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치과정과 제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포퓰리즘이 팽배할수록 기존 대의민주주의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높다. 많은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일반 국민들의 이익을 자신들이 실현할 것을 약속하면서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우회하고 자신에 대한 견제를 무력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점진적 후퇴현상의 중요한 원인으로 간주된다. 실제 위에서 언급된 민주주의 후퇴와 관련된 지도자들은 모두 포퓰리스트로 평가받는다. 더 나아가 포퓰리즘은 정치양극화의 원인으로도 작동하면서 양극화와 함께 행정권력 집중화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를 더욱 약화시킨다(Haggard and Kaufman 2021). 이외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감소와 권위주의 국가들에 의한 적극적인 반민주주의 영향력도 민주주의 후토의 원인으로 언급된다. 기존 민주주의가 만족스러운 사회경제적 결과를 산출해내지 못하여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감소하고 민주주의의 정당성도 함께 감소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비민주적인 지도자를 용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낮은 경제성장율, 증대하는 불평등, 연한 부패들이 민주주의의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거론된다. 또한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규범과 질서를 약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비민주적인 지도자에 대한 지원을 보내기 때문에 민주주의 후퇴가 일어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여러 민주주의 지수를 보더라도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경험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포퓰리즘 운동이나 이념이 아직 확산되지 않았고, 포퓰리스트 정당이 자리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많은 학자들이나 언론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양극화의 심화는 강력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대통령제와 결합될 경우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화는 더욱 강화될 수 있고,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한국이 민주주의 후퇴로부터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몇몇 학자들은 이미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하였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최장집 2020, Shin 2020). 정치엘리트와 시민 모두 민주적 규칙과 규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할 때만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
<참고문헌> 최장집. 2020. “다시 한국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한국정치연구』 29(2): 1-26. Bermeo, Nancy. 2016. “On democratic backsliding.” Journal of Democracy 27(1): 5–19. Graham, Mattew H. and Svolik, Milan.W. 2020. “Democracy in America? Partisanship, polarization, and the robustness of support for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4(2), pp.392- Haggard, Stephan, and Robert Kaufman. Backsliding: Democratic Regress in the Contemporary World.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New York: Broadway Books. Mudde, Cas. 2004. “The populist zeitgeist.” Government and Opposition 39(4): 541-563. Shin, Ki Wook. 2020. “South Korea’s Democratic Decay” Journal of Democracy. 31(3): 100-114. Treisman, Daniel. 2023. “How Great Is the Current Danger to Democracy? Assessing the Risk with Historical Data.”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Forthcoming Waldner, David, and Ellen Lust. 2018 “Unwelcome Change: Coming to Terms with Democratic Backsliding.”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21, no. 1 (2018): 9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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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사)경제사회연구원입니다.
2023년 3월 2일, 경사연 외교안보센터(센터장: 황태희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에서 김남규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를 모시고 "민주주의의 점진적 후퇴 현상에 관하여"라는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하였습니다. 민주주의 후퇴 현상과 주요 원인에 대해 분석한 연구로서, 관련 내용을 정리하여 공유합니다.

데이터 출처: V-Dem Democracy Report 2023, 10. 좌측 그래프는 국가별 평균을, 우측 그래프는 국가별 인구수를 가중치로 한 가중평균을 보여줌.이러한 민주주의 수준 하락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벌어지는 민주주의의 점진적 후퇴와 기존 권위주의 국가에서 권위주의가 강화되는 현상을 모두 포함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이 특히 민주주의 후퇴에 주목하는 이유는 과거와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주로 불안정하고 혼란스러운 정국 속에서 벌어진 군부의 쿠데타로 인해 민주주의가 붕괴되었지만, 최근에는 주로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서 선출된 행정부 수반에 의해 붕괴된다는 차이점을 지닌다(Bermeo 2016; Haggard and Kaufman 2021). 민주주의 후퇴를 야기한 대표적인 지도자로는 베네주엘라의 차베스 대통령, 헝가리의 오반 총리, 폴란드의 카친스키 총리,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 터키의 에르도안 대통령, 브라질의 보나우로소 대통령, 인도의 모디 총리가 있다.
물론 과거에도 지도자가 의회를 해산하고 헌법을 중지시키는 소위 친위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붕괴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군부 쿠데타처럼 친위쿠데타의 경우 민주주의 붕괴는 즉각적이고 뚜렷하게 파악될 수 있다. 그러나 최근의 민주주의 후퇴는 과거와는 달리 민주적으로 선출된 지도자가 합법적 수단을 활용해 자신에 대한 입법부, 사법부, 시민사회에 의한 견제와 감시를 점진적으로 약화시키고 반대세력을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따라서 민주주의 퇴조가 점진적으로 서서히 일어나고, 지도자와 여당이 의회를 장악한 뒤 입법을 통해 행정권력 집중화(executive aggrandizement)를 시도하기 때문에 야당이나 시민사회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을 바로 인식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다는 문제점을 지닌다(Bermeo 2016; Haggard and Kaufman 2021). 행정권력의 지속적 집중화는 견제와 균형, 사법부의 독립성, 헌정주의를 무너뜨리고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위협하여 민주주의 질의 하락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베네주엘라나 헝가리처럼 민주주의가 붕괴되어 권위주의체제로 이행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후퇴의 원인은 무엇인가? 학자들은 다양한 설명을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널리 언급되는 원인 중 하나는 정치양극화다(Haggard and Kaufman 2021). 많은 국가에서 정치엘리트 간의 이념적 차이가 증가하였고, 동시에 지지하는 정당과 지지하지 않는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태도 차이도 증가하였다. 이처럼 정치적 양극화가 증대할수록 시민들은 당파성을 강조하여 자신이 속한 집단이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것을 민주주의 규범과 제도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시하게 된다. 따라서 시민들은 지도자들에 의한 행정권력 집중을 더 용인하게 되고, 집권세력은 시민들로부터의 처벌을 두려워하지 않고 더욱 견제와 균형 원칙을 훼손하고 민주주의를 훼손하게 되는 것이다(Graham and Svolik 2020).
민주주의의 점진적 후퇴의 또다른 원인으로 여겨지는 요인은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사회를 순수한 대중과 부패한 엘리트라는 두 개의 동질적이고 적대적인 집단으로 구분하고 정치는 대중의 일반의지의 표현이어야 한다고 보는 이념’ (Mudde 2004, 543)으로 정의된다. 이러한 포퓰리즘은 다양한 가치와 이해관계를 상정하는 다원주의와 이를 매개하고 중재하는 대의민주주의 정치과정과 제도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포퓰리즘이 팽배할수록 기존 대의민주주의와 정치 시스템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높다. 많은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일반 국민들의 이익을 자신들이 실현할 것을 약속하면서 기존의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우회하고 자신에 대한 견제를 무력화하려고 하기 때문에 포퓰리즘이 민주주의 점진적 후퇴현상의 중요한 원인으로 간주된다. 실제 위에서 언급된 민주주의 후퇴와 관련된 지도자들은 모두 포퓰리스트로 평가받는다. 더 나아가 포퓰리즘은 정치양극화의 원인으로도 작동하면서 양극화와 함께 행정권력 집중화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를 더욱 약화시킨다(Haggard and Kaufman 2021).
이외에도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 감소와 권위주의 국가들에 의한 적극적인 반민주주의 영향력도 민주주의 후토의 원인으로 언급된다. 기존 민주주의가 만족스러운 사회경제적 결과를 산출해내지 못하여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가 감소하고 민주주의의 정당성도 함께 감소하기 때문에 시민들이 비민주적인 지도자를 용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낮은 경제성장율, 증대하는 불평등, 연한 부패들이 민주주의의 불만족스러운 결과로 거론된다. 또한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권위주의 국가들이 민주주의 규범과 질서를 약화시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비민주적인 지도자에 대한 지원을 보내기 때문에 민주주의 후퇴가 일어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한국의 경우 여러 민주주의 지수를 보더라도 민주주의 후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는 경험적 증거는 발견되지 않는다. 그리고 포퓰리즘 운동이나 이념이 아직 확산되지 않았고, 포퓰리스트 정당이 자리잡지는 않았다. 그러나 한국에서도 많은 학자들이나 언론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각한 수준에 도달했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양극화의 심화는 강력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대통령제와 결합될 경우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화는 더욱 강화될 수 있고, 민주주의에도 심각한 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에 한국이 민주주의 후퇴로부터 안전하다고 볼 수 없다. 몇몇 학자들은 이미 한국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이하였다는 진단을 내리고 있다(최장집 2020, Shin 2020). 정치엘리트와 시민 모두 민주적 규칙과 규범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부단한 노력을 경주할 때만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다.
<참고문헌>
최장집. 2020. “다시 한국민주주의를 생각한다.” 『한국정치연구』 29(2): 1-26.
Bermeo, Nancy. 2016. “On democratic backsliding.” Journal of Democracy 27(1): 5–19.
Graham, Mattew H. and Svolik, Milan.W. 2020. “Democracy in America? Partisanship, polarization, and the robustness of support for democracy in the United States.” American Political Science Review, 114(2), pp.392-
Haggard, Stephan, and Robert Kaufman. Backsliding: Democratic Regress in the Contemporary World. New York, NY: Cambridge University Press, 2021.
Levitsky, Steven, and Daniel Ziblatt. 2018. How Democracies Die. New York: Broadway Books.
Mudde, Cas. 2004. “The populist zeitgeist.” Government and Opposition 39(4): 541-563.
Shin, Ki Wook. 2020. “South Korea’s Democratic Decay” Journal of Democracy. 31(3): 100-114.
Treisman, Daniel. 2023. “How Great Is the Current Danger to Democracy? Assessing the Risk with Historical Data.” Comparative Political Studies. Forthcoming
Waldner, David, and Ellen Lust. 2018 “Unwelcome Change: Coming to Terms with Democratic Backsliding.”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21, no. 1 (2018): 93–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