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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의 20주년에 맞춰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의 평화를 기원할 계획으로
지난 4월 발표했던 바이든 미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은 어긋나버렸다.
8월 15일 탈레반이 대통령궁을 접수했고 아프간 정부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혼돈의 전란에 휩싸여있는 아프간 그 중심에 있는 탈레반에 대해 조명해보도록 한다.
2021년 4월 바이든 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의 20주년에 맞춰 철군을 완료한 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의 평화를 기원할 계획이었다. 계획은 어긋났다. 7월 말부터 시작된 아프간 체류 미국인의 대피가 한창이던 8월 15일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은 카불의 대통령궁을 접수했고 아프간 정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프간 정부의 극적 몰락은 관료 기구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불신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의 엘리트는 국제원조금을 둘러싸고 부패 카르텔을 형성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부패한 군 간부들이 명부를 허위 기재해 급료를 가로챘고 사병들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군의 내부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달으며 폭발의 압력을 버티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나 고질적인 부패와 불신 때문에 정확한 여론은 찾기 어려웠고 몰락의 징후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한 나라의 정부군이 무장 게릴라 앞에서 별다른 저항도 없이 항복해버렸다. 미국의 20년 아프간 재건 정책이 함께 무너진 순간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부시 공화당 정부는 아프간에 숨어있던 알 카에다 수장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탈레반 정권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달여 뒤 미국은 대대적 공습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속전속결 전법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부시 정부는 과학전이라는 이름 아래 소규모 특수부대와 공군을 첨단 군사기술로 무장해 최소의 희생으로 전투를 마무리했다.
문제는 미국이 탈레반 정권 축출 후 체계적인 전후 안정화 및 재건 프로그램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고 나토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얼떨결에 공동 책임을 떠맡았다는 점이다. 재건 정책의 목표는 대상 국가가 국가의 기본 역량을 키우고 안정적이고 민주적 시스템을 다지도록 옆에서 돕는 것인데 그 핵심 주체가 불분명해졌다.
2004년 첫 민주선거로 출범한 카르자이 정부는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겨지며 카불 밖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탈레반 축출 직후 조직된 아프간 전체 부족장 회의에서 원로들은 타지크 출신의 이슬람 법학자 시라트를 임시정부의 수장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간 최대 부족이자 탈레반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파슈툰 출신에게 임시정부를 맡기고 싶어했다. 결국 2001년 12월 카르자이가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최종 낙점됐고 미국과 함께 탈레반 격퇴전에서 싸웠던 북부동맹의 타지크 출신들에겐 주요 부처 장관직이 돌아갔다.
파키스탄으로 피해 전열을 가다듬은 탈레반 반군은 2005년부터 구식 소총과 사제폭탄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이에 맞설 미 전투병은 턱없이 부족했고 험준한 산악 지형에 첨단 군사기술은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시작한 상황이어서 아프간 증파가 어려웠다. 미국은 탈레반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취약한 카르자이 정부 대신 아프간의 요충지를 장악한 여러 군벌에 의존했고 이들의 자금줄인 마약 밀매를 눈감아줬다. 결국 탈레반 반군도 어렵지 않게 마약 거래를 했고 재정을 불려갔다.
2008년 이래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가 급증하며 아프간 전체가 혼란에 빠지자 2009년 오바마 정부는 증파를 결단했다. 2011년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사살한 후 2014년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은 아프간 임무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의 영향력이 커지자 2015년 철군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 이후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중동에서 발 빼기’를 선언하며 이란 핵 합의의 독단적 파기, 편파적 친이스라엘 행보, 우방 쿠르드 배신과 급작스런 시리아 철군 발표를 강행했다. 2019년에는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접촉을 시도하더니 2020년 평화협정을 맺었고 결국 2021년 5월에 철군하기로 약속했다.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뒤집기’ 정책이 진행됐지만 ‘중동 떠나기’ 기조는 이어지는 듯 했다. 아프간과 이라크 참전으로 인한 피로감과 여론 악화,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감소로 인해 중국 견제가 우선순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비록 공화당 정부가 시작한 아프간 전쟁이었으나 동맹의 가치와 인권·민주주의의 구호 아래 미국의 귀환을 외치는 민주당 정부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년 간 1조 달러 이상을 쓰고 2300명이 넘는 미군이 사망했으나 아프간은 끝내 탈레반 손에 다시 넘어갔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과 중앙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알 카에다와 ISIS 대원들이 국제 지하디스트의 새로운 근거지 아프간으로 속속 입성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면서 새로운 혼란 증폭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더해 과거 미국을 도와 탈레반 축출에 앞장섰던 북부동맹이 탈레반을 향한 항전을 선포했다.
현재 중동과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는 트럼프 정부 시기 굳어진 미국의 신뢰도추락과 힘의 공백을 틈타 터키, 이란, 러시아가 제국의 영광을 소환하며 팽창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리아, 예멘, 리비아의 장기 내전은 대리전 양상으로 자리 잡으며 자유주의 지역 질서를 흔들고 있다. G2로 부상한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은 중동에서 떠나고 있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며 중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인프라로 연결해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달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터키, 이스라엘 등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경제협력을 강조해왔다.
중국은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프간과 70km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 정권의 존재 자체만으로 신장위구르의 분리독립 세력을 자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탈레반의 2인자 바라다르를 톈진으로 초대해 신장위구르 분리독립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과의 단절을 촉구하면서 일대일로 전략을 통한 아프간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은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이 아프간을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통제하길 바라고 있다. 소연방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아프간에 개입해 장기전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의 부재로 인한 아프간 내 탈레반의 독주, 알 카에다와 ISIS의 확산세가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슬람 급진 원리주의의 수출이 존재의 이유인 탈레반은 신장위구르에서 자행되는 중국 정부의 무슬림 탄압에 침묵할 수 없을 것이다. 탈레반은 물질문명과 쾌락주의를 반대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 무력 사용을 정당화한다. 이슬람을 극단적이고 교조적으로 해석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추종세력을 확대하고 세를 넓히는 것을 조직의 목표로 삼는다. 향후 탈레반 정권이 중국에 커다란 안보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목이다.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의 20주년에 맞춰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의 평화를 기원할 계획으로
지난 4월 발표했던 바이든 미 정부의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은 어긋나버렸다.
8월 15일 탈레반이 대통령궁을 접수했고 아프간 정부는 한순간에 무너져버렸다.
혼돈의 전란에 휩싸여있는 아프간 그 중심에 있는 탈레반에 대해 조명해보도록 한다.
2021년 4월 바이든 미 정부는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의 철수 계획을 공식 발표했다.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의 20주년에 맞춰 철군을 완료한 후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 반군의 평화를 기원할 계획이었다. 계획은 어긋났다. 7월 말부터 시작된 아프간 체류 미국인의 대피가 한창이던 8월 15일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은 카불의 대통령궁을 접수했고 아프간 정부는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프간 정부의 극적 몰락은 관료 기구와 사회 전반에 만연한 부정부패와 불신 때문이다. 아프간 정부의 엘리트는 국제원조금을 둘러싸고 부패 카르텔을 형성한 것으로 악명 높았다. 부패한 군 간부들이 명부를 허위 기재해 급료를 가로챘고 사병들의 사기는 날로 떨어졌다. 군의 내부 불만이 임계점을 향해 치달으며 폭발의 압력을 버티는 위태로운 상황이었으나 고질적인 부패와 불신 때문에 정확한 여론은 찾기 어려웠고 몰락의 징후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한 나라의 정부군이 무장 게릴라 앞에서 별다른 저항도 없이 항복해버렸다. 미국의 20년 아프간 재건 정책이 함께 무너진 순간이었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부시 공화당 정부는 아프간에 숨어있던 알 카에다 수장 빈 라덴의 신병 인도를 탈레반 정권에 요구했으나 거절당했다. 한달여 뒤 미국은 대대적 공습과 함께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했고 속전속결 전법으로 탈레반 정권을 축출했다. 부시 정부는 과학전이라는 이름 아래 소규모 특수부대와 공군을 첨단 군사기술로 무장해 최소의 희생으로 전투를 마무리했다.
문제는 미국이 탈레반 정권 축출 후 체계적인 전후 안정화 및 재건 프로그램을 깊이 고려하지 않았고 나토 주도의 국제안보지원군(ISAF)이 얼떨결에 공동 책임을 떠맡았다는 점이다. 재건 정책의 목표는 대상 국가가 국가의 기본 역량을 키우고 안정적이고 민주적 시스템을 다지도록 옆에서 돕는 것인데 그 핵심 주체가 불분명해졌다.
2004년 첫 민주선거로 출범한 카르자이 정부는 미국의 꼭두각시로 여겨지며 카불 밖에서는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탈레반 축출 직후 조직된 아프간 전체 부족장 회의에서 원로들은 타지크 출신의 이슬람 법학자 시라트를 임시정부의 수장으로 선정했다. 그러나 미국은 아프간 최대 부족이자 탈레반의 영향력이 지배적인 파슈툰 출신에게 임시정부를 맡기고 싶어했다. 결국 2001년 12월 카르자이가 임시정부의 대통령으로 최종 낙점됐고 미국과 함께 탈레반 격퇴전에서 싸웠던 북부동맹의 타지크 출신들에겐 주요 부처 장관직이 돌아갔다.
파키스탄으로 피해 전열을 가다듬은 탈레반 반군은 2005년부터 구식 소총과 사제폭탄으로 게릴라전을 전개했다. 이에 맞설 미 전투병은 턱없이 부족했고 험준한 산악 지형에 첨단 군사기술은 무용지물이었다. 당시 미국은 2003년 이라크 전쟁까지 시작한 상황이어서 아프간 증파가 어려웠다. 미국은 탈레반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취약한 카르자이 정부 대신 아프간의 요충지를 장악한 여러 군벌에 의존했고 이들의 자금줄인 마약 밀매를 눈감아줬다. 결국 탈레반 반군도 어렵지 않게 마약 거래를 했고 재정을 불려갔다.
2008년 이래 탈레반의 자살폭탄 테러가 급증하며 아프간 전체가 혼란에 빠지자 2009년 오바마 정부는 증파를 결단했다. 2011년 미 특수부대가 파키스탄에서 빈 라덴을 사살한 후 2014년 미군과 국제안보지원군은 아프간 임무 종료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아프간에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의 영향력이 커지자 2015년 철군 계획을 잠시 보류했다. 이후 들어선 트럼프 정부는 ‘중동에서 발 빼기’를 선언하며 이란 핵 합의의 독단적 파기, 편파적 친이스라엘 행보, 우방 쿠르드 배신과 급작스런 시리아 철군 발표를 강행했다. 2019년에는 카타르에서 탈레반과 접촉을 시도하더니 2020년 평화협정을 맺었고 결국 2021년 5월에 철군하기로 약속했다.
2021년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하면서 ‘트럼프 뒤집기’ 정책이 진행됐지만 ‘중동 떠나기’ 기조는 이어지는 듯 했다. 아프간과 이라크 참전으로 인한 피로감과 여론 악화, 셰일가스 개발에 따른 중동 의존도 감소로 인해 중국 견제가 우선순위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비록 공화당 정부가 시작한 아프간 전쟁이었으나 동맹의 가치와 인권·민주주의의 구호 아래 미국의 귀환을 외치는 민주당 정부에서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년 간 1조 달러 이상을 쓰고 2300명이 넘는 미군이 사망했으나 아프간은 끝내 탈레반 손에 다시 넘어갔다.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하자 국경을 접한 파키스탄과 중앙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알 카에다와 ISIS 대원들이 국제 지하디스트의 새로운 근거지 아프간으로 속속 입성하고 있다. 특히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 ISIS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면서 새로운 혼란 증폭의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더해 과거 미국을 도와 탈레반 축출에 앞장섰던 북부동맹이 탈레반을 향한 항전을 선포했다.
현재 중동과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는 트럼프 정부 시기 굳어진 미국의 신뢰도추락과 힘의 공백을 틈타 터키, 이란, 러시아가 제국의 영광을 소환하며 팽창주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리아, 예멘, 리비아의 장기 내전은 대리전 양상으로 자리 잡으며 자유주의 지역 질서를 흔들고 있다. G2로 부상한 중국 견제를 위해 미국은 중동에서 떠나고 있지만 중국은 일대일로 전략을 추진하며 중동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중국은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를 인프라로 연결해 에너지 자원의 안정적 확보를 달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터키, 이스라엘 등과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경제협력을 강조해왔다.
중국은 탈레반의 아프간 재집권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프간과 70km 국경을 접하고 있는 중국 입장에서는 이슬람 급진 무장조직 탈레반 정권의 존재 자체만으로 신장위구르의 분리독립 세력을 자극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2021년 7월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탈레반의 2인자 바라다르를 톈진으로 초대해 신장위구르 분리독립운동 단체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과의 단절을 촉구하면서 일대일로 전략을 통한 아프간 경제 지원을 약속했다. 중국은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이 아프간을 하루빨리 안정적으로 통제하길 바라고 있다. 소연방과 미국이 그랬던 것처럼 아프간에 개입해 장기전의 늪에 빠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니 미국의 부재로 인한 아프간 내 탈레반의 독주, 알 카에다와 ISIS의 확산세가 당황스러울 것이다.
이슬람 급진 원리주의의 수출이 존재의 이유인 탈레반은 신장위구르에서 자행되는 중국 정부의 무슬림 탄압에 침묵할 수 없을 것이다. 탈레반은 물질문명과 쾌락주의를 반대하고 권력 쟁취를 위해 무력 사용을 정당화한다. 이슬람을 극단적이고 교조적으로 해석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면서 추종세력을 확대하고 세를 넓히는 것을 조직의 목표로 삼는다. 향후 탈레반 정권이 중국에 커다란 안보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아 보이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