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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와 정치과정을 매개해주는 핵심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는 항상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단 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이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해 스스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부정적 당파성 위주로 흘러가는 정당 정치의 논리를 긍정적 당파성의 정치과정으로 전환하는데 놓여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 민주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 대표 체계의 핵심적 연결 고리가 바로 정당을 매개로 한 유권자와 정치엘리트의 연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찍이 샷슈나이더(Schattschneider)는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Modern Democracy is Unthinkable Save in Terms of Political Parties)”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정당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와 정치과정을 매개해주는 핵심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는 항상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단 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가 정기적으로 수행해오고 있는 “주요 사회기관 역할수행평가” 조사 결과(2022년 3월 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의 각 사회기관·집단이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란 설문 항에 대해 정당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전체 1000명 응답자 중 85%에 이른다. 의료기관, 대기업, 교육기관, 공공기관, 시민단체, 언론 등 사회 주요 기관 및 조직을 대상으로 한 긍정/부정 평가에서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한 자릿수로 언론에 이어 최하위를 기록했는데, 정당에 대한 이 같은 최악의 평가는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비슷한 패턴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 한다. 또한 정당에 대한 부정 평가는 개인의 이념 성향(진보-중도-보수)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한 자릿수로 조사되어 정당에 대한 불신은 결코 유권자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나 정당의 이념 노선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짐작할 수 있다.
*출처: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148-3), 여론 속의 여론(사회지표: 주요 사회기관 역할수행평가). 2021.9.28.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은 민주화 이후 주기적으로 등장했던 제3정당에 대한 유권자 수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비록 등장 이후에 한국 정당 체계(Party System) 내에서 의미 있는 행위자로 안착하지는 못하였지만, 문국현의 창조한국당과 안철수의 국민의당 창당 그리고 이어진 대선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이들 정당의 돌풍은 거대 양당에 대한 다수 유권자들의 불신과 대안 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수요를 확인시켜주기에는 충분한 근거로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러한 대안 정당의 부상이 정당 체계 내부에서 지속하지 못한 데에는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수요를 정치과정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채 기성 정당들의 문제적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 제3정당들의 공급 측면에서의 한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물론, 대안 정치 세력들이 더 원활하게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게 하여 외부로부터 추가된 경쟁 압력을 통해 기성 정당 체계에 변화를 유발한다면 그러한 구조적 변화가 유권자들의 정당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양대 정당 중심의 경쟁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방편으로 혼합 선거제도의 연동성을 살려 결과적으로 비례성(Proportionality)을 높여야 한다는 개혁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전개되었던 선거제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위성정당의 등장은 군소 정당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채택이 한국의 현실 정치 맥락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선거제 개혁 논의에 있어 더 깊이 고려해 봐야 할 문제는 과연 제3정당에 대한 여론의 지속적 수요를 기존의 군소 정당들이 어떻게 그들의 확고한 지지 세력으로 담아내고 흡수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상당수의 유권자 여론이 정치권의 제3세력과 원외에서부터라도 동행할 수 있다면 정치제도 개혁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양대 정당이 느끼는 현실적 압박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여전히 높지 않으며, 또한 대안 정당이나 제3정치 세력에 대한 유권자 수요가 기존의 진보 정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 또한 뼈아프지만 제3정당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기성 정당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낮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당의 경쟁 구도 속에 맥없이 갇혀버린 신세가 되었다. 양대 카르텔 정당의 제도적 장벽에 막혀 밖으로부터의 정당 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기존 정당 체계 내부에서 안으로부터의 개혁 방안을 고려해 볼 만도 하다. 기성 정당의 개혁 방안으로 가장 손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정치인 세대 교체를 위한 새로운 인물의 영입이겠지만, 우리 정당들이 그간 행해 온 외부 인재 영입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근본적 정당 개혁을 위한 목적보다는 선거철에 여론의 관심과 주목을 끌기 위한 홍보용 성격이 더 강했다는 것이 적절한 분석일 것이다. 사실 정당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정치 엘리트의 육성과 충원이라 할 때, 한국의 정당들이 인재 육성과 충원 기능에 소홀한 대신 정치권 밖에서 대중 인지도가 높은 인사를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낮은 인기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입하여 소비하고, 그들을 선거 경쟁의 간판으로 내세우는 정치 문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여론의 지지나 신뢰가 무척 낮은데도 불구하고 한국 기성 정당들이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온 비결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선거철 외부 인재 영입은 유권자 지지를 지속적으로 견인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아무리 대중 호감도가 높은 인사라도 정치권에 일단 발을 내딛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참신함이 경감되고 대중 호감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며, 애초에 소수의 정치 신인이 정당 정치 자체에 개혁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기대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또 하나 떠 올릴 수 있는 전략은 정당이 이름이나 간판을 바꿔 쇄신 의지를 홍보하는 것인데, 실제로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진보-보수 진영 구분할 것없이 너무나 많은 정당 이름들이 소비되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만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행정 수반을 배출하고 의기양양하게 집권하였지만 레임덕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집권당이 익숙한 정당 간판을 교체하고 떠나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 그리고 마치 본인들은 지난 5년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듯 거리를 두는 행위는 책임 정당 정치에 기반한 정당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관점에서 낮은 정당 신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유권자-정당 연계가 지속 가능했던 배경에는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 균열이 존재한다. 한국 지역주의 정치의 부상에는 다양한 배경 요인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서 정치 엘리트들에 의한 지역감정의 동원은 미성숙하고 폐쇄적인 한국 정당 경쟁 체계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 출신지와 거주지 등 지연을 매개로 한 유권자 연계 전략은 한국 정당에 지역이라는 비교적 안정적 지지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유권자들은 거대 양당에 대한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폐쇄적 양당 체계의 굴레에 갇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지역 기반의 거대 정당들은 안정된 유권자 지지 구조에 안주한 나머지 편견과 반감을 선거 전략으로 동원하는 방식에만 익숙할 뿐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호를 집약하고 정책으로 입안하는 정당 본연의 대표성 기능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지역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3김(金) 등이 2000년대 초반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86세대 등 새로운 정치 엘리트 그룹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게 되면서 지역주의의 완화 가능성과 함께 이념, 세대 등 대체 균열의 부상에 대한 논의들이 불거져 나오기도 하였다. 또한 영남 출신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두 차례 당선(노무현과 문재인) 등 굵직굵직한 상징적 사건들과 함께 주로 PK 지역을 시작으로 하여 선거 지역주의에 대한 의미 있는 변화 조짐이 최근 선거에서 연이어 관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슈는 지역주의의 완화 또는 쇠퇴에 따라 한국에서 유권자-정당 연계 방식 또는 정당 대표 체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찾아왔는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우선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역 변인에 대한 대체 균열로 많은 학자들이 주목한 이념 갈등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 정치학계에서 선거, 정당, 여론 등 소위 정치과정을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들에게 있어 당파적 양극화(Partisan Polarization)는 그야말로 가장 뜨거운(hot) 연구 주제이며 이에 대한 많은 학문적 결과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물론, 심각한 당파적 양극화는 엘리트 차원에서 정국의 교착을 심화시켜 정책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유권자 차원에서는 중도층이나 무당파 유권자들을 정치 과정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념이 정책을 구성하고 그 선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선명한 이념 선호와 정책 차별성을 중심으로 한 정당 경쟁 구도는 한국 정당 민주주의 발전 차원에서 반드시 해롭기만 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뚜렷한 이념 균열을 경계로 한 정당 간 정책 경쟁은 정당의 정책 차별성을 높이고 유권자들의 정당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여 정책 경쟁 중심의 정당 정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최근 전개되고 있는 양극화는 정당 간 건전한 정책 경쟁보다는 극심한 진영 갈등과 감정적 대립에 기반한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비단 정치엘리트들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을 내 편(in-group)과 상대편(out-group)으로 나누고 폐쇄적 집단 정체성에 기반하여 혐오와 반감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행위로부터 우리가 정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지역-이념으로 이어지는 한국 정당 정치의 대표적 균열 구조 하에서 우리의 기성 정당들이 유권자와 정당을 연계하고 매개하는 방식은 이익의 집약과 대표, 정책의 개발과 입안 등 정당 고유의 순기능이 아닌 상대 세력에 대한 편견과 반감의 동원, 즉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에 온전히 의존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뤄왔다. 즉, 지역으로 경계를 짓든 아니면 이념 성향으로 편을 가르든 우리 정당들은 유권자들을 구별 짓고 우리 편 안 존재하는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과 반감에 기대 지지자들을 손쉽게(?) 동원하는 방식에만 익숙할 뿐 합리적 경쟁을 통해 우수한 정책 역량과 경쟁력을 호소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긍정적 당파성(Positive Partisanship)의 정치 과정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당파적 정체성에 기대어 정당이 상대편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거나 방관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편의 결집을 유도하는 방식은 결국 정당 정치를 위기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지지층들 사이에서 당파적 정체성이 심화될수록 정치 엘리트들의 일반 당원 및 지지층에 대한 리더십은 약화되고, 당내 다원주의는 무너지게 되어 합리적 경쟁과 관용 기반의 정당 정치 공간은 위협받게 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정당 정치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소위 팬덤(fandom) 정치의 문제는 현재 우리 정당 정치가 갖고 있는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정당이 유권자들의 집단적 정체성에 기대어 손쉬운 동원 전략을 전개해 온 나머지 정치 엘리트들이 지지층에 대한 리더십과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민주주의 정치과정 자체가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팬덤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당이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해 스스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 위주로 흘러가는 정당 정치의 논리를 긍정적 당파성(Positive Partisanship)의 정치과정으로 전환하는데 놓여 있다. 상대 정파를 부정하고 지지층의 적대적 태도를 동원하는 방식은 우리 편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는 일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유권자 전반의 정당정치에 대한 피로와 불신을 증대시키기 마련이다. 반감과 혐오의 정서를 중심으로 우리편이 결집할수록 정당의 리더십은 약화되고, 상대 정당에 대한 우리 지지자들의 불신과 반감은 증대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작용은 상대편 진영으로부터 우리 진영에게도 역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는 경쟁하는 양대 정당에 대한 유권자 전체의 반감과 불신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한국리서치의 또 다른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기성 정당 정치에 높은 불만족도를 보인다 할 때, 그러한 불만족의 주된 이유로는 “자기들의 이익만 챙겨서(71%)”, “정당 간 정쟁이 심해서(12%)” 등 정당의 사익 추구와 정쟁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당의 역할로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치참여를 독려하는 역할”, “정치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역할”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역할” 등이 높은 순위로 나타났으며, 더욱 흥미롭게도 정당의 기대 역할 중에서 “정치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역할” 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족도가 가장 높게 조사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정당들이 고질적 정당 불신의 장벽을 넘어서 어떻게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어 한 번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
정당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와 정치과정을 매개해주는 핵심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는 항상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단 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이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해 스스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부정적 당파성 위주로 흘러가는 정당 정치의 논리를 긍정적 당파성의 정치과정으로 전환하는데 놓여 있다.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 민주주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의 민주주의 대표 체계의 핵심적 연결 고리가 바로 정당을 매개로 한 유권자와 정치엘리트의 연계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 일찍이 샷슈나이더(Schattschneider)는 “현대 민주주의는 정당 없이는 생각할 수 없다(Modern Democracy is Unthinkable Save in Terms of Political Parties)”라고 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정당이 현대 민주주의 체제에서 유권자와 정치과정을 매개해주는 핵심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신뢰는 항상 바닥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 사실은 비단 학자들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함께 고민하고 풀어가야 할 중요한 정치적 과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회 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가 정기적으로 수행해오고 있는 “주요 사회기관 역할수행평가” 조사 결과(2022년 3월 조사 결과)를 보면 “다음의 각 사회기관·집단이 자신의 역할을 얼마나 잘 수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란 설문 항에 대해 정당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들이 전체 1000명 응답자 중 85%에 이른다. 의료기관, 대기업, 교육기관, 공공기관, 시민단체, 언론 등 사회 주요 기관 및 조직을 대상으로 한 긍정/부정 평가에서 정당에 대한 시민들의 평가는 한 자릿수로 언론에 이어 최하위를 기록했는데, 정당에 대한 이 같은 최악의 평가는 이 조사가 시작된 이래 줄곧 비슷한 패턴을 보여왔다는 점에서 그 심각성을 더 한다. 또한 정당에 대한 부정 평가는 개인의 이념 성향(진보-중도-보수)에 상관없이 일관되게 한 자릿수로 조사되어 정당에 대한 불신은 결코 유권자 정당일체감(Party Identification)이나 정당의 이념 노선만의 문제는 아니라고 짐작할 수 있다.
*출처:한국리서치 주간리포트(148-3), 여론 속의 여론(사회지표: 주요 사회기관 역할수행평가). 2021.9.28.
기성 정당에 대한 불신은 민주화 이후 주기적으로 등장했던 제3정당에 대한 유권자 수요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비록 등장 이후에 한국 정당 체계(Party System) 내에서 의미 있는 행위자로 안착하지는 못하였지만, 문국현의 창조한국당과 안철수의 국민의당 창당 그리고 이어진 대선 및 국회의원 선거에서의 이들 정당의 돌풍은 거대 양당에 대한 다수 유권자들의 불신과 대안 정당의 필요성에 대한 수요를 확인시켜주기에는 충분한 근거로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러한 대안 정당의 부상이 정당 체계 내부에서 지속하지 못한 데에는 새로운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수요를 정치과정에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채 기성 정당들의 문제적 행태를 그대로 답습한 제3정당들의 공급 측면에서의 한계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물론, 대안 정치 세력들이 더 원활하게 정치권에 진입할 수 있게 하여 외부로부터 추가된 경쟁 압력을 통해 기성 정당 체계에 변화를 유발한다면 그러한 구조적 변화가 유권자들의 정당 불신을 어느 정도 해소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이유에서 양대 정당 중심의 경쟁 구도를 타파하기 위한 하나의 제도적 방편으로 혼합 선거제도의 연동성을 살려 결과적으로 비례성(Proportionality)을 높여야 한다는 개혁 논의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전개되었던 선거제 개편을 둘러싼 사회적 논란과 위성정당의 등장은 군소 정당에게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는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의 채택이 한국의 현실 정치 맥락에서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확인시켜줄 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선거제 개혁 논의에 있어 더 깊이 고려해 봐야 할 문제는 과연 제3정당에 대한 여론의 지속적 수요를 기존의 군소 정당들이 어떻게 그들의 확고한 지지 세력으로 담아내고 흡수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이다. 상당수의 유권자 여론이 정치권의 제3세력과 원외에서부터라도 동행할 수 있다면 정치제도 개혁의 주체라 할 수 있는 양대 정당이 느끼는 현실적 압박감도 결코 무시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에서 비례성 높은 선거제도에 대한 유권자들의 지지는 여전히 높지 않으며, 또한 대안 정당이나 제3정치 세력에 대한 유권자 수요가 기존의 진보 정당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는 불편한 사실 또한 뼈아프지만 제3정당들이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따라서 유권자들은 기성 정당에 대한 뿌리 깊은 불신과 낮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양대 정당의 경쟁 구도 속에 맥없이 갇혀버린 신세가 되었다. 양대 카르텔 정당의 제도적 장벽에 막혀 밖으로부터의 정당 개혁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라면 기존 정당 체계 내부에서 안으로부터의 개혁 방안을 고려해 볼 만도 하다. 기성 정당의 개혁 방안으로 가장 손쉽게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정치인 세대 교체를 위한 새로운 인물의 영입이겠지만, 우리 정당들이 그간 행해 온 외부 인재 영입의 역사를 보면 그것은 근본적 정당 개혁을 위한 목적보다는 선거철에 여론의 관심과 주목을 끌기 위한 홍보용 성격이 더 강했다는 것이 적절한 분석일 것이다. 사실 정당의 주요 역할 중 하나가 정치 엘리트의 육성과 충원이라 할 때, 한국의 정당들이 인재 육성과 충원 기능에 소홀한 대신 정치권 밖에서 대중 인지도가 높은 인사를 기성 정당에 대한 유권자들의 낮은 인기를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영입하여 소비하고, 그들을 선거 경쟁의 간판으로 내세우는 정치 문화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면 여론의 지지나 신뢰가 무척 낮은데도 불구하고 한국 기성 정당들이 꾸준히 명맥을 유지해 온 비결은 무엇일까? 앞에서 언급한 선거철 외부 인재 영입은 유권자 지지를 지속적으로 견인하는데, 분명 한계가 있다. 아무리 대중 호감도가 높은 인사라도 정치권에 일단 발을 내딛게 되면 시간이 갈수록 참신함이 경감되고 대중 호감도가 떨어지기 마련이며, 애초에 소수의 정치 신인이 정당 정치 자체에 개혁의 새 바람을 불러일으킨다는 기대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또 하나 떠 올릴 수 있는 전략은 정당이 이름이나 간판을 바꿔 쇄신 의지를 홍보하는 것인데, 실제로 민주화 이후 한국에서 진보-보수 진영 구분할 것없이 너무나 많은 정당 이름들이 소비되어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상기해볼 만하다.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해 행정 수반을 배출하고 의기양양하게 집권하였지만 레임덕 대통령의 퇴임과 함께 집권당이 익숙한 정당 간판을 교체하고 떠나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연출하는 것, 그리고 마치 본인들은 지난 5년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운 듯 거리를 두는 행위는 책임 정당 정치에 기반한 정당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 관점에서 낮은 정당 신뢰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유권자-정당 연계가 지속 가능했던 배경에는 영호남을 중심으로 한 지역 균열이 존재한다. 한국 지역주의 정치의 부상에는 다양한 배경 요인이 존재하지만 그 가운데서 정치 엘리트들에 의한 지역감정의 동원은 미성숙하고 폐쇄적인 한국 정당 경쟁 체계의 주된 이유가 되었다. 출신지와 거주지 등 지연을 매개로 한 유권자 연계 전략은 한국 정당에 지역이라는 비교적 안정적 지지 기반을 마련해 주었고, 유권자들은 거대 양당에 대한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폐쇄적 양당 체계의 굴레에 갇히게 된 것이다. 또한 그러한 지역 기반의 거대 정당들은 안정된 유권자 지지 구조에 안주한 나머지 편견과 반감을 선거 전략으로 동원하는 방식에만 익숙할 뿐 다양한 유권자들의 선호를 집약하고 정책으로 입안하는 정당 본연의 대표성 기능을 제대로 발전시키지 못했다.
지역을 상징적으로 대표하는 3김(金) 등이 2000년대 초반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고 86세대 등 새로운 정치 엘리트 그룹이 대거 정치권에 진입하게 되면서 지역주의의 완화 가능성과 함께 이념, 세대 등 대체 균열의 부상에 대한 논의들이 불거져 나오기도 하였다. 또한 영남 출신 민주당 대선 후보들의 두 차례 당선(노무현과 문재인) 등 굵직굵직한 상징적 사건들과 함께 주로 PK 지역을 시작으로 하여 선거 지역주의에 대한 의미 있는 변화 조짐이 최근 선거에서 연이어 관찰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이슈는 지역주의의 완화 또는 쇠퇴에 따라 한국에서 유권자-정당 연계 방식 또는 정당 대표 체계에 의미 있는 변화가 찾아왔는가의 문제이다. 이에 대한 답을 구하기 위해 우선은 2000년대 중반 이후 지역 변인에 대한 대체 균열로 많은 학자들이 주목한 이념 갈등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 정치학계에서 선거, 정당, 여론 등 소위 정치과정을 연구하는 다수의 학자들에게 있어 당파적 양극화(Partisan Polarization)는 그야말로 가장 뜨거운(hot) 연구 주제이며 이에 대한 많은 학문적 결과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물론, 심각한 당파적 양극화는 엘리트 차원에서 정국의 교착을 심화시켜 정책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나아가 유권자 차원에서는 중도층이나 무당파 유권자들을 정치 과정으로부터 소외시키는 부정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념이 정책을 구성하고 그 선호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선명한 이념 선호와 정책 차별성을 중심으로 한 정당 경쟁 구도는 한국 정당 민주주의 발전 차원에서 반드시 해롭기만 하다고는 할 수 없다. 실제로 뚜렷한 이념 균열을 경계로 한 정당 간 정책 경쟁은 정당의 정책 차별성을 높이고 유권자들의 정당 정치에 대한 관심을 높여 정책 경쟁 중심의 정당 정치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최근 전개되고 있는 양극화는 정당 간 건전한 정책 경쟁보다는 극심한 진영 갈등과 감정적 대립에 기반한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의 성격이 더 강하다는 점에서 문제적이다. 비단 정치엘리트들뿐만 아니라 일반 유권자들을 내 편(in-group)과 상대편(out-group)으로 나누고 폐쇄적 집단 정체성에 기반하여 혐오와 반감을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행위로부터 우리가 정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결국, 지역-이념으로 이어지는 한국 정당 정치의 대표적 균열 구조 하에서 우리의 기성 정당들이 유권자와 정당을 연계하고 매개하는 방식은 이익의 집약과 대표, 정책의 개발과 입안 등 정당 고유의 순기능이 아닌 상대 세력에 대한 편견과 반감의 동원, 즉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에 온전히 의존하는 방식이 주류를 이뤄왔다. 즉, 지역으로 경계를 짓든 아니면 이념 성향으로 편을 가르든 우리 정당들은 유권자들을 구별 짓고 우리 편 안 존재하는 상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과 반감에 기대 지지자들을 손쉽게(?) 동원하는 방식에만 익숙할 뿐 합리적 경쟁을 통해 우수한 정책 역량과 경쟁력을 호소하여 지지층을 결집하는 긍정적 당파성(Positive Partisanship)의 정치 과정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이다.
문제는 당파적 정체성에 기대어 정당이 상대편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거나 방관하고 다른 한편으로 우리 편의 결집을 유도하는 방식은 결국 정당 정치를 위기에 빠뜨릴 수밖에 없다. 지지층들 사이에서 당파적 정체성이 심화될수록 정치 엘리트들의 일반 당원 및 지지층에 대한 리더십은 약화되고, 당내 다원주의는 무너지게 되어 합리적 경쟁과 관용 기반의 정당 정치 공간은 위협받게 되고 위축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정당 정치와 관련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소위 팬덤(fandom) 정치의 문제는 현재 우리 정당 정치가 갖고 있는 병폐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정당이 유권자들의 집단적 정체성에 기대어 손쉬운 동원 전략을 전개해 온 나머지 정치 엘리트들이 지지층에 대한 리더십과 통제력을 상실한 상태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민주주의 정치과정 자체가 공격적이고 배타적인 팬덤에 의해 휘둘리고 있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정당이 무너진 신뢰 회복을 위해 스스로 취할 수 있는 방법은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 위주로 흘러가는 정당 정치의 논리를 긍정적 당파성(Positive Partisanship)의 정치과정으로 전환하는데 놓여 있다. 상대 정파를 부정하고 지지층의 적대적 태도를 동원하는 방식은 우리 편의 지지층을 결집시키는데는 일부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유권자 전반의 정당정치에 대한 피로와 불신을 증대시키기 마련이다. 반감과 혐오의 정서를 중심으로 우리편이 결집할수록 정당의 리더십은 약화되고, 상대 정당에 대한 우리 지지자들의 불신과 반감은 증대된다. 그리고 이러한 부정적 작용은 상대편 진영으로부터 우리 진영에게도 역으로 작용하여 결과적으로는 경쟁하는 양대 정당에 대한 유권자 전체의 반감과 불신을 증가시키는 악순환을 낳는다.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던 한국리서치의 또 다른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 국민들 대다수가 기성 정당 정치에 높은 불만족도를 보인다 할 때, 그러한 불만족의 주된 이유로는 “자기들의 이익만 챙겨서(71%)”, “정당 간 정쟁이 심해서(12%)” 등 정당의 사익 추구와 정쟁이 언급되었다. 그리고 응답자들이 생각하는 바람직한 정당의 역할로는 “국민의 이익을 대변하고, 정치참여를 독려하는 역할”, “정치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역할” “정책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역할” 등이 높은 순위로 나타났으며, 더욱 흥미롭게도 정당의 기대 역할 중에서 “정치적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역할” 수행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족도가 가장 높게 조사되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한국 정당들이 고질적 정당 불신의 장벽을 넘어서 어떻게 유권자들의 신뢰를 회복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 있어 한 번 깊이 있게 고민해 봐야 할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