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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인물을 기준 삼아야 할까?
우병현 조선IT대표가 면밀히 골라 건넨 이 책에는 혼돈의 시대에 탄생한 리더 네 명의 자취가 남겨져 있다.
그 중 미국 36대 대통령을 지낸 린드 B. 존슨을 따라 당파와 계층을 초월하는 통합적 리더십을 배워 본다.
모든 공동체는 공동체를 존속시키면서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역사 속에서 리더의 원형 또는 최고의 리더를 찾습니다. 근대 이전 국가 공동체 리더는 다수의 민중이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혈연에 의해 정해지거나, 소수층 내 권력 쟁투에 의해 리더가 결정됐습니다. 투표에 의해 최고 권력자를 뽑고,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법에 의해 강제로 교체할 수 있게 되면서 민중이 리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근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국가 리더의 이슈는 이렇게 바뀝니다. 특정 시기에 민중은 어떤 리더를 선택해야 하는가? 공동체와 시대 정신이 원하는 리더를 어떻게 감별하는가? 또 정치를 꿈꾸는 젊은 정치 지망자는 최고 리더로서 시대적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가, 또 시대적 과제를 읽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원칙을 갖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도리스 키언스 굿윈은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질을 닦고 혼돈의 상황에서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는가를 탐구한 역사학자입니다. 굿윈은 콜비 대학교에서 인문학사Bachelor of Arts 학위를 받았고, 1968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미국 대통령학을 가르치며 링컨, 시어 도어 루스벨트, 린든 존슨 등 미국 대통령 평전을 출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 니다. 특히 2005년에 출간한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은 링컨의 초당적 리더십을 생생하게 복원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링컨의 리더십을 지향하면서 굿윈의 권력의 조건은 노대통령 집권 전후에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굿윈의 여러 저서 중에서 2019년에 출간한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Leadership: In Turbulent Times)'을 이번에 추천합니다.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은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즈벨트, 린든 존슨 등 4명의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뤘습니다. 크게 성장과정, 위기와 극복 과정, 대통령 재직시 리더십 등 3개 항목에 따라 네 명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이들은 기질, 외모, 신체, 언어적 능력, 사람을 다루는 기술 등이 모두 달랐습니다. 링컨과 존슨은 농촌 출신이고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도시 뉴욕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또 두 명의 루스벨트는 하버드대를 졸업했으나 링컨은 독학했고 존슨은 텍사스 사범대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네 명 모두 커다란 정치적 야망을 갖고 꾸준히 지적 능력, 공감 능력, 신체적 능력 등 리더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키웠다는 점만큼은 같았습니다.
이들은 또 모두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무너지며 좌절에 빠진 시기를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0대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존슨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지원을 받으며 상원 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뒤 실의에 빠졌습니다. 또 정치적 배신을 당하거나, 가족을 잃고 삶 자체에 회의를 품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굿윈은 편지 등 다양한 원천 자료를 바탕으로 네 명이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렸습니다.
네 명이 대통령을 맡은 시기는 공통적으로 극도의 혼란 시기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바로 네 명의 통치 시절의 특징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를 추진하면서 남과 북이 쫙 갈라졌고, 급기야 남부 간 내전을 치렀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으로 인해 4명중 1명이 일자리를 잃고 은행이 문을 닫 는 초유의 경제 위기를 맞았습니다. 또 역사상 최대의 목숨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을 치렀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린든 존슨 역시 혼돈의 한가운데서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윌리엄 매킨리 25대 대통령이 무정부주의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존슨은 인기 절정의 케네디 대통령이 하비 오스월드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운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네 인물은 미국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지점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반대파거나 적대적 인물이라도 대화하면서 포용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명분 자체보다, 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통합의 힘을 활용한 것입니다. 역경 속에서 발휘된 그들의 리더십은 결국 전 세계 각지 이민자로 구성된 이질적 공동체를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리더십을 통해 특정인의 권력 독점을 강력하게 막는 미국 공화주의 전통을 확실하게 정립하였습니다.
좌)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도리스 컨스 굿윈 저/강주헌 역, 커넥팅 ,2020.
우) 저자 도리스 컨스 굿윈 (Doris Kearns Goodwin)
이 책 중에서 린든 존슨 편을 주목할 것을 권합니다.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위인전이나 영화를 통해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존슨은 이들에 비해 한국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그는 베트남 전쟁 책임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그의 업적이나 리더십은 거의 안개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굿윈은 왜 린든 존슨을 혼돈의 시대 리더로 선정했을까요. 굿윈은 흑인 투표권을 보장하는 시민권법, 감세, 메디케어 등 미국의 핵심 개혁 정책을 입법화했던 존슨의 리더십을 주목했습니다. 특히 굿윈은 정치 일생을 의회에서 보냈던 배경을 활용하여 국회라는 제도 안에서 반대파와 대화하면서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입법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실제 존슨은 미국 정치사에서 ‘입법 절차의 달인'으로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의회 활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굿윈이 존슨을 혼돈의 시대를 이끈 리더로 채택한 데는 존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경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굿윈은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존슨의 백악관에 지원해 보좌관을 지냈던 것입니다. 그 인연으로 존슨이 퇴임한 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존슨의 회고록 작성을 돕기도 했습니다. 린든 존슨은 텍사스 스톤월 출신으로 주의회, 연방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거쳐 케네디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서거로 인해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이어 대선에서 승리하여 1969년까지 미국을 이끌었습니다. 존슨은 미국 남부 출신이지만 인종주의와 계급적 차별을 없애는 개혁에 정치 인생을 모두 바쳤습니다.
특히 존슨은 상원 원내 대표와 대통령에 재직하는 동안 시민권법Civil Rights Act을 제정하는데 자신의 모든 정치적 자산과 능력을 활용했습니다. 존슨이 재직시 입법화했던 1964년 시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은 인종, 민족, 출신 국가 그리고 소수 종교와 여성을 차별하는 것을 불법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법안은 미국 민권 법제화의 기념비적 법안 중의 하나로 평가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이 법은 불평등한 투표자 등록 요구, 학교와 직장 그리고 편의시설에서 인종 분리를 금지시켰습니다.
굿윈은 의회 리더로서 잔뼈가 굵었던 존슨이 아니었다면 시민권법의 법제화가 불가능했거나 더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서부와 동부, 자유주의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공화당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합을 이뤄 남부 인종차별주의자의 반발을 무력화시킨 주역이 바로 존슨이었기 때문입니다.
존슨은 무엇보다 국회와의 대화와 소통을 아주 중요시했습니다. 존슨은 대통령에 취임하고 10개월 동안, 존슨은 모든 의원을 적어도 한 번씩 백악관에 초대했습니다. 30명씩 부부가 만찬에 초대를 받았고, 모든 비용은 존슨이 부담했습니다. 만찬이 끝나면 남자들은 대통령과 함께 버번위스키를 마시며 시가를 피웠다고 합니다. 존슨은 또 남부 지역 인종주의자 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남부와 영원히 결별해야 할 운명이었다. 의회에서 오랫동안 충실한 친구였던 남부 의원들과도 멀어질 가능성이 컸다”라며 시민권법 제정 당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과 시민권법에 대해 토론하는 린든 B. 존슨. (출처=TIMES)
존슨의 최대 정치적 자산은 의회를 속속들이 알고, 의회 주요 리더들의 속마음과 장단점을 꿰뚫어 보는 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감세 법안을 통과시킬 때, 반대파 리더에게 예산 절감 카드로 협상했고, 시민권법 상정 자체를 미뤘던 하원 의장에 대해 의회법으로 압박해 결국 법안을 상장시키도록 했습니다. 존슨은 이런 정치력은 메디케어법 등 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했던 진보적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도 훌륭하게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존슨은 국내 문제에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달려들었지만, 대외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태도로 인해 베트남 문제를 제한된 전문가에게 맡기는 등 내부 혁신을 꾀할 때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다가 결국 수렁에 빠졌습니다. 또 존슨이 혁신 정책을 입법하는데 사용했던 기법들은 베트남 전쟁의 내용과 성격을 미국
인에게 감추는 데도 사용되며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를 들어 더 많은 병력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걸 피하기 위해 존슨은 예비군을 동원하지 않고, 징집영장 발급을 늘렸고 모병을 확대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존슨의 아킬레스건이었고, 결국 그는 1970년 대선 불참을 선언하면서 베트남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존슨이 비록 대외 정책에서 무능을 드러냈지만, 존슨의 시민권법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백인만의 민주주의를 흑인, 여성, 유색 이민자 등 소외층으로 확대시킨 주인공이 바로 존슨이기 때문입니다. 존슨은 1972년 12월 11일 텍사스 오스틴에 소재한 LBJ 도서관에서 개최된 시민권 심포지엄에서 시민권법에 대한 그의 애착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시민권이 늘 우선순위는 아니란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본질'은 피부색과 신념, 조상,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개개인에게 품위 있고 온전한 삶을 보장하는데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혼돈의 시기가 당파와 모든 계층을 초월하는 통합 리더십을 불러올까요? 아니면 네 명은 준비된 혼돈의 시대의 리더였을까요? 젊은 정치 지망자는 진영을 떠나 혼돈의 시대를 이끌었던 네 명의 리더십을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공동체 전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굴도 마주치기 싫은 정적이라도 무릎을 맞대고 소통하고 협상하려고 했던 초당적 리더십을 살펴봐야 합니다.
미래세대를 세우기 위해, 우리는 어떤 인물을 기준 삼아야 할까?
우병현 조선IT대표가 면밀히 골라 건넨 이 책에는 혼돈의 시대에 탄생한 리더 네 명의 자취가 남겨져 있다.
그 중 미국 36대 대통령을 지낸 린드 B. 존슨을 따라 당파와 계층을 초월하는 통합적 리더십을 배워 본다.
모든 공동체는 공동체를 존속시키면서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리더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역사 속에서 리더의 원형 또는 최고의 리더를 찾습니다. 근대 이전 국가 공동체 리더는 다수의 민중이 선택할 수 없었습니다. 혈연에 의해 정해지거나, 소수층 내 권력 쟁투에 의해 리더가 결정됐습니다. 투표에 의해 최고 권력자를 뽑고, 또 일정 시간이 지나면 법에 의해 강제로 교체할 수 있게 되면서 민중이 리더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근대 민주주의 시스템에서 국가 리더의 이슈는 이렇게 바뀝니다. 특정 시기에 민중은 어떤 리더를 선택해야 하는가? 공동체와 시대 정신이 원하는 리더를 어떻게 감별하는가? 또 정치를 꿈꾸는 젊은 정치 지망자는 최고 리더로서 시대적 과제를 훌륭하게 수행하려면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하는가, 또 시대적 과제를 읽는 능력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 위기 상황에서 어떤 원칙을 갖고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집니다.
도리스 키언스 굿윈은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이 어떻게 자질을 닦고 혼돈의 상황에서 시대적 과제를 제대로 수행했는가를 탐구한 역사학자입니다. 굿윈은 콜비 대학교에서 인문학사Bachelor of Arts 학위를 받았고, 1968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하버드 대학교에서 미국 대통령학을 가르치며 링컨, 시어 도어 루스벨트, 린든 존슨 등 미국 대통령 평전을 출간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습 니다. 특히 2005년에 출간한 ‘권력의 조건(Team of Rivals)’은 링컨의 초당적 리더십을 생생하게 복원하여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링컨의 리더십을 지향하면서 굿윈의 권력의 조건은 노대통령 집권 전후에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굿윈의 여러 저서 중에서 2019년에 출간한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Leadership: In Turbulent Times)'을 이번에 추천합니다.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은 에이브러햄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즈벨트, 린든 존슨 등 4명의 미국 대통령의 리더십을 다뤘습니다. 크게 성장과정, 위기와 극복 과정, 대통령 재직시 리더십 등 3개 항목에 따라 네 명을 비교 분석했습니다. 이들은 기질, 외모, 신체, 언어적 능력, 사람을 다루는 기술 등이 모두 달랐습니다. 링컨과 존슨은 농촌 출신이고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도시 뉴욕의 부유한 환경에서 성장했습니다. 또 두 명의 루스벨트는 하버드대를 졸업했으나 링컨은 독학했고 존슨은 텍사스 사범대를 졸업했습니다. 하지만 네 명 모두 커다란 정치적 야망을 갖고 꾸준히 지적 능력, 공감 능력, 신체적 능력 등 리더가 갖춰야 할 핵심 역량을 키웠다는 점만큼은 같았습니다.
이들은 또 모두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이 무너지며 좌절에 빠진 시기를 겪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40대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존슨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지원을 받으며 상원 의원에 도전했다가 낙선한 뒤 실의에 빠졌습니다. 또 정치적 배신을 당하거나, 가족을 잃고 삶 자체에 회의를 품는 위기에 처하기도 했습니다. 굿윈은 편지 등 다양한 원천 자료를 바탕으로 네 명이 인생의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그렸습니다.
네 명이 대통령을 맡은 시기는 공통적으로 극도의 혼란 시기였습니다. 이 책의 제목이 바로 네 명의 통치 시절의 특징을 압축하고 있습니다. 링컨은 노예제도 폐지를 추진하면서 남과 북이 쫙 갈라졌고, 급기야 남부 간 내전을 치렀습니다.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공황으로 인해 4명중 1명이 일자리를 잃고 은행이 문을 닫 는 초유의 경제 위기를 맞았습니다. 또 역사상 최대의 목숨을 앗아간 2차 세계대전을 치렀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와 린든 존슨 역시 혼돈의 한가운데서 대통령직에 올랐습니다. 시어도어 루스벨트는 윌리엄 매킨리 25대 대통령이 무정부주의에 의해 암살당하면서, 존슨은 인기 절정의 케네디 대통령이 하비 오스월드의 총탄에 쓰러지면서 대통령직을 승계했습니다. 한치 앞도 보기 어려운 혼돈의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네 인물은 미국의 운명을 가를 수 있는 지점에서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반대파거나 적대적 인물이라도 대화하면서 포용하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명분 자체보다, 명분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통합의 힘을 활용한 것입니다. 역경 속에서 발휘된 그들의 리더십은 결국 전 세계 각지 이민자로 구성된 이질적 공동체를 세계 최강국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그런 리더십을 통해 특정인의 권력 독점을 강력하게 막는 미국 공화주의 전통을 확실하게 정립하였습니다.
좌) <혼돈의 시대 리더의 탄생>, 도리스 컨스 굿윈 저/강주헌 역, 커넥팅 ,2020.
우) 저자 도리스 컨스 굿윈 (Doris Kearns Goodwin)
이 책 중에서 린든 존슨 편을 주목할 것을 권합니다. 링컨, 시어도어 루스벨트,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위인전이나 영화를 통해 한국인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존슨은 이들에 비해 한국인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특히 그는 베트남 전쟁 책임자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인해 그의 업적이나 리더십은 거의 안개에 가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굿윈은 왜 린든 존슨을 혼돈의 시대 리더로 선정했을까요. 굿윈은 흑인 투표권을 보장하는 시민권법, 감세, 메디케어 등 미국의 핵심 개혁 정책을 입법화했던 존슨의 리더십을 주목했습니다. 특히 굿윈은 정치 일생을 의회에서 보냈던 배경을 활용하여 국회라는 제도 안에서 반대파와 대화하면서 정치적 성과를 만들어내는 입법 리더십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실제 존슨은 미국 정치사에서 ‘입법 절차의 달인'으로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의회 활용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굿윈이 존슨을 혼돈의 시대를 이끈 리더로 채택한 데는 존슨 대통령의 보좌관을 지낸 경력과 관련이 있습니다. 굿윈은 하버드대에서 학위를 받은 뒤, 존슨의 백악관에 지원해 보좌관을 지냈던 것입니다. 그 인연으로 존슨이 퇴임한 후 하버드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존슨의 회고록 작성을 돕기도 했습니다. 린든 존슨은 텍사스 스톤월 출신으로 주의회, 연방 하원의원, 상원의원을 거쳐 케네디 정부에서 부통령을 지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서거로 인해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이어 대선에서 승리하여 1969년까지 미국을 이끌었습니다. 존슨은 미국 남부 출신이지만 인종주의와 계급적 차별을 없애는 개혁에 정치 인생을 모두 바쳤습니다.
특히 존슨은 상원 원내 대표와 대통령에 재직하는 동안 시민권법Civil Rights Act을 제정하는데 자신의 모든 정치적 자산과 능력을 활용했습니다. 존슨이 재직시 입법화했던 1964년 시민권법The Civil Rights Act of 1964은 인종, 민족, 출신 국가 그리고 소수 종교와 여성을 차별하는 것을 불법화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 법안은 미국 민권 법제화의 기념비적 법안 중의 하나로 평가를 받습니다. 예를 들어 이 법은 불평등한 투표자 등록 요구, 학교와 직장 그리고 편의시설에서 인종 분리를 금지시켰습니다.
굿윈은 의회 리더로서 잔뼈가 굵었던 존슨이 아니었다면 시민권법의 법제화가 불가능했거나 더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라고 봤습니다. 서부와 동부, 자유주의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공화당의 있을 법하지 않은 연합을 이뤄 남부 인종차별주의자의 반발을 무력화시킨 주역이 바로 존슨이었기 때문입니다.
존슨은 무엇보다 국회와의 대화와 소통을 아주 중요시했습니다. 존슨은 대통령에 취임하고 10개월 동안, 존슨은 모든 의원을 적어도 한 번씩 백악관에 초대했습니다. 30명씩 부부가 만찬에 초대를 받았고, 모든 비용은 존슨이 부담했습니다. 만찬이 끝나면 남자들은 대통령과 함께 버번위스키를 마시며 시가를 피웠다고 합니다. 존슨은 또 남부 지역 인종주의자 의원들을 설득하는데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는 “내가 태어나고 자란 남부와 영원히 결별해야 할 운명이었다. 의회에서 오랫동안 충실한 친구였던 남부 의원들과도 멀어질 가능성이 컸다”라며 시민권법 제정 당시 심경을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 킹과 시민권법에 대해 토론하는 린든 B. 존슨. (출처=TIMES)
존슨의 최대 정치적 자산은 의회를 속속들이 알고, 의회 주요 리더들의 속마음과 장단점을 꿰뚫어 보는 눈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감세 법안을 통과시킬 때, 반대파 리더에게 예산 절감 카드로 협상했고, 시민권법 상정 자체를 미뤘던 하원 의장에 대해 의회법으로 압박해 결국 법안을 상장시키도록 했습니다. 존슨은 이런 정치력은 메디케어법 등 사회적 이해관계가 첨예했던 진보적 법안을 통과시키는데도 훌륭하게 작동했습니다.
하지만 존슨은 국내 문제에 무엇이든지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달려들었지만, 대외 문제에 대해서는 가급적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 태도로 인해 베트남 문제를 제한된 전문가에게 맡기는 등 내부 혁신을 꾀할 때와 전혀 다른 접근법을 사용하다가 결국 수렁에 빠졌습니다. 또 존슨이 혁신 정책을 입법하는데 사용했던 기법들은 베트남 전쟁의 내용과 성격을 미국
인에게 감추는 데도 사용되며 부정적인 결과를 낳았습니다. 예를 들어 더 많은 병력의 필요성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는걸 피하기 위해 존슨은 예비군을 동원하지 않고, 징집영장 발급을 늘렸고 모병을 확대했습니다. 베트남 전쟁은 존슨의 아킬레스건이었고, 결국 그는 1970년 대선 불참을 선언하면서 베트남 전쟁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존슨이 비록 대외 정책에서 무능을 드러냈지만, 존슨의 시민권법이 남긴 유산은 오늘날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을 이루고 있습니다. 백인만의 민주주의를 흑인, 여성, 유색 이민자 등 소외층으로 확대시킨 주인공이 바로 존슨이기 때문입니다. 존슨은 1972년 12월 11일 텍사스 오스틴에 소재한 LBJ 도서관에서 개최된 시민권 심포지엄에서 시민권법에 대한 그의 애착을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시민권이 늘 우선순위는 아니란 점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정부의 본질'은 피부색과 신념, 조상, 성별, 연령에 상관없이
모든 개개인에게 품위 있고 온전한 삶을 보장하는데 있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혼돈의 시기가 당파와 모든 계층을 초월하는 통합 리더십을 불러올까요? 아니면 네 명은 준비된 혼돈의 시대의 리더였을까요? 젊은 정치 지망자는 진영을 떠나 혼돈의 시대를 이끌었던 네 명의 리더십을 깊게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공동체 전체 이익을 위해서라면 얼굴도 마주치기 싫은 정적이라도 무릎을 맞대고 소통하고 협상하려고 했던 초당적 리더십을 살펴봐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