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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당사자로서 정부와 기업에 우리의 권리와 요구를 명확히 표현해 우리가 원하는 건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는 목표를 상기시켜야 한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인식하게 된 첫 세대이자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시간 불일치성이 존재하며, 발생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게 뭘까요? 바로 이산화탄소라고 불리는 기후위기의 주범입니다. 다른 환경문제와는 다르게 이산화탄소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는 기후위기를 누가 어디서 가속화시키는지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태안 기름 유출 사태를 떠올려보면, 누가 유출을 했는지, 오염이 되었는지 바로 알 수 있고, 바로 어떤 조치를 취하면 눈에 결과가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우리나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대기로 퍼져나가고 곧바로 기온 상승을 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1.1도가 상승했다고 과학자들이 얘기하는데 이는 과거 최소 20년 전에 배출했던 온실가스들이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역시 이후에 기후변화를 가속화 시킬 것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기후가 더 극심하게 바뀌었을 때 책임소재를 찾기 어렵고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기후위기는 더욱더 지금의 청년, 청소년, 미래세대에 중요한 것입니다.
‘세대 간 형평성’(Inter-generational Equity)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이 단어는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서문에 딱 한 번 등장하는데 쉽게 말해 기존의 기성세대가 행복하게, 그리고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던 것처럼 미래세대 역시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기후변화협약의 서문에 들어가면서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의 앞날을 망치면 안 된다는 전제조건이 명문화된 것입니다. 이 단어가 저에게 더 특별한 이유는 저 역시 ‘세대 간 형평성’이란 단어를 협약문 안에 넣기 위해 파리 기후변화 협상장에서 다른 해외청년들과 함께 로비활동을 진행했었고, 이 단어 하나 포함시키는 데에 선진국과 기성세대의 극심한 반대에 놀랐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가 포함됨으로써 우리는 미래를 꿈꿀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기성세대 역시 기후위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세대 간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대 간 대립 구도가 아닌 세대 간 협력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좋건 싫건 지금의 시스템을 만들고 결정하는 것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미래세대는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며 기성세대와 협력할 필요가 있고, 기성세대는 책임감을 가지고 앞에서 도와줘야 ‘세대 간 형평성’이 달성 가능할 것입니다.
‘세대 간 형평성’에 더해 ‘탄소예산’도 미래세대가 기후위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잔여량입니다. 적정한 탄소 배출은 지구가 알아서 자정작용을 통해 처리를 하는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과도한 탄소 배출입니다. 이미 우리가 과거에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누적되어 1.1도가 올랐고, 우리가 그나마 최소한의 기후위기 속에서 살 수 있는 지구 평균온도인 1.5도씨 상승으로 제한하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탄소 예산’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탄소를 배출하는 속도를 보면 1.5도 목표의 탄소 예산을 초과하는데 7년도 안 남았다고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에서 발표했습니다.
더 쉬운 비유를 들자면 탄소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쓰기로 한 대대로 마을에 내려오는 우물로 생각하면 됩니다. 저절로 우물은 계속 조금씩 차겠지만, 밑바닥까지 다 긁어 써버리면 우물이 말라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물에 밑바닥이 없을 거라고 가정하고 마구 퍼서 썼지만, 바닥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동안의 소비 관성으로 물을 쓰다 보니 바닥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한번 마르면 다시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이러한 현재 시스템을 멈추고 미래를 고려해 시스템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대라고 아무 죄책감 없이 전기도 자원도 펑펑 쓰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요? 이러한 삶은 곧 파멸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이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부동산, 취업 등등의 문제가 청년들에겐 가장 크게 다가오겠지만 진짜 더 큰 실존의 위협은 기후위기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맞을 미래는 단순히 식량 가격이 올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식량이 자원화되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난민이 될 수 있고, 야외에서 일하는 일자리의 경우 날씨로 인한 재해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올라가는 기온상승,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기후 우울감을 느끼는 미래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더욱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 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번식의 욕구마저 꺾어 저출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럼 미래를 꿈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국가, 기업, 개인 모두의 역할과 책임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행동만을 강조하는 것도, 국가나 기업에 일방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결국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국민이 요구해야 하고, 기업 역시 소비자가 반응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소비자 역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때 기업이나 정부에서 응답이 없다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주체가 상호연관성을 인지하고 유기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기후변화가 아닌 시스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이 목소리 내야 하는 이유는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정부와 기업에 우리의 권리와 요구를 명확히 표현해 우리가 원하는 건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는 목표를 상기시켜야 합니다. 물론 정부와 기업이 알아서 기후위기 대응을 잘해주면 좋겠지만 그들에게는 당사자가 요구하지 않은 행동을 선제적으로 취하기엔 명분이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으며,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택하고 요구해야 내일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미래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어 오히려 좋다는 희망이 더 절실한 시점입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게 된 첫 세대이자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정부와 기업에 우리의 권리와 요구를 명확히 표현해 우리가 원하는 건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는 목표를 상기시켜야 한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인식하게 된 첫 세대이자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이다.
눈에 보이지 않고, 시간 불일치성이 존재하며, 발생 장소에 머무르지 않는다. 이게 뭘까요? 바로 이산화탄소라고 불리는 기후위기의 주범입니다. 다른 환경문제와는 다르게 이산화탄소의 이러한 특성 때문에 우리는 기후위기를 누가 어디서 가속화시키는지 바로 알 수가 없습니다. 예를 들어 예전 태안 기름 유출 사태를 떠올려보면, 누가 유출을 했는지, 오염이 되었는지 바로 알 수 있고, 바로 어떤 조치를 취하면 눈에 결과가 보입니다. 그렇지만 이산화탄소는 눈에 보이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느낄 수 없습니다. 우리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우리나라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전 세계 대기로 퍼져나가고 곧바로 기온 상승을 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1.1도가 상승했다고 과학자들이 얘기하는데 이는 과거 최소 20년 전에 배출했던 온실가스들이 이제 활동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역시 이후에 기후변화를 가속화 시킬 것입니다. 10년 후, 20년 후 기후가 더 극심하게 바뀌었을 때 책임소재를 찾기 어렵고 당장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기후위기는 더욱더 지금의 청년, 청소년, 미래세대에 중요한 것입니다.
‘세대 간 형평성’(Inter-generational Equity)이라는 단어를 아시나요? 이 단어는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서문에 딱 한 번 등장하는데 쉽게 말해 기존의 기성세대가 행복하게, 그리고 미래를 꿈꾸며 살 수 있던 것처럼 미래세대 역시 그럴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단어가 기후변화협약의 서문에 들어가면서 기성세대는 미래세대의 앞날을 망치면 안 된다는 전제조건이 명문화된 것입니다. 이 단어가 저에게 더 특별한 이유는 저 역시 ‘세대 간 형평성’이란 단어를 협약문 안에 넣기 위해 파리 기후변화 협상장에서 다른 해외청년들과 함께 로비활동을 진행했었고, 이 단어 하나 포함시키는 데에 선진국과 기성세대의 극심한 반대에 놀랐던 기억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어가 포함됨으로써 우리는 미래를 꿈꿀 권리를 주장할 수 있고 기성세대 역시 기후위기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만 주의해야 할 점은 세대 간 형평성을 달성하기 위해 기성세대의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세대 간 대립 구도가 아닌 세대 간 협력을 통해서 달성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좋건 싫건 지금의 시스템을 만들고 결정하는 것은 기성세대이기 때문에 미래세대는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며 기성세대와 협력할 필요가 있고, 기성세대는 책임감을 가지고 앞에서 도와줘야 ‘세대 간 형평성’이 달성 가능할 것입니다.
‘세대 간 형평성’에 더해 ‘탄소예산’도 미래세대가 기후위기의 특성을 이해하고 행동을 이끌어내는데 중요한 개념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가 배출할 수 있는 탄소의 잔여량입니다. 적정한 탄소 배출은 지구가 알아서 자정작용을 통해 처리를 하는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과도한 탄소 배출입니다. 이미 우리가 과거에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누적되어 1.1도가 올랐고, 우리가 그나마 최소한의 기후위기 속에서 살 수 있는 지구 평균온도인 1.5도씨 상승으로 제한하기 위해 우리가 앞으로 배출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탄소 예산’입니다. 안타깝게도 지금 우리가 탄소를 배출하는 속도를 보면 1.5도 목표의 탄소 예산을 초과하는데 7년도 안 남았다고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에서 발표했습니다.
더 쉬운 비유를 들자면 탄소는 우리 모두 다 같이 쓰기로 한 대대로 마을에 내려오는 우물로 생각하면 됩니다. 저절로 우물은 계속 조금씩 차겠지만, 밑바닥까지 다 긁어 써버리면 우물이 말라버릴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우물에 밑바닥이 없을 거라고 가정하고 마구 퍼서 썼지만, 바닥이 있다는 걸 많은 사람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알면서도 그동안의 소비 관성으로 물을 쓰다 보니 바닥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한번 마르면 다시 돌릴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청소년과 청년들이 이러한 현재 시스템을 멈추고 미래를 고려해 시스템을 새로 설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세대라고 아무 죄책감 없이 전기도 자원도 펑펑 쓰면서 편하게 살고 싶은 생각이 없을까요? 이러한 삶은 곧 파멸이라는 걸 직감하고 있기 때문에, 불편과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이를 바꾸자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 부동산, 취업 등등의 문제가 청년들에겐 가장 크게 다가오겠지만 진짜 더 큰 실존의 위협은 기후위기입니다. 기후변화로 인해 우리가 맞을 미래는 단순히 식량 가격이 올라가는 것뿐만 아니라 식량이 자원화되어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고, 이로 인해 난민이 될 수 있고, 야외에서 일하는 일자리의 경우 날씨로 인한 재해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인 위협뿐만 아니라 속수무책으로 올라가는 기온상승, 기후위기 앞에서 무력감을 느끼며 기후 우울감을 느끼는 미래세대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더욱 예측 불가능한 세상이 되면서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번식의 욕구마저 꺾어 저출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그럼 미래를 꿈꾸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국가, 기업, 개인 모두의 역할과 책임이 필요합니다. 개인의 행동만을 강조하는 것도, 국가나 기업에 일방적인 비난을 하는 것은 결국 아무 문제도 해결할 수 없습니다. 국가는 국민이 요구해야 하고, 기업 역시 소비자가 반응해야 움직일 수 있습니다. 소비자 역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할 때 기업이나 정부에서 응답이 없다면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주체가 상호연관성을 인지하고 유기적으로 행동할 때 우리는 기후변화가 아닌 시스템 변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청소년과 청년이 목소리 내야 하는 이유는 기후위기 당사자로서 정부와 기업에 우리의 권리와 요구를 명확히 표현해 우리가 원하는 건 지속 가능한 세상이라는 목표를 상기시켜야 합니다. 물론 정부와 기업이 알아서 기후위기 대응을 잘해주면 좋겠지만 그들에게는 당사자가 요구하지 않은 행동을 선제적으로 취하기엔 명분이 부족한 측면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으며, 쉬운 길이 아니라 옳은 길을 택하고 요구해야 내일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편안하고 행복한 미래가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우리의 미래는 우리가 주체적으로 만들 수 있어 오히려 좋다는 희망이 더 절실한 시점입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위기로 인식하게 된 첫 세대이자 기후위기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세대입니다.